쌍둥이 손주 녀석들이 책가방을 멘다. 그 작은 어깨 위에 봄빛이 내려앉는다. 아이들의 등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 아이들이 세상에 오기까지의 시간이 봄빛처럼 조용히 되살아난다.

결혼 후 십 년, 둘째 아들의 집에는 아이 웃음소리 대신 적막이 머물렀다. 아이 이야기가 나오면 아들은 입을 닫았고, 우리는 묻지 못한 채 마음만 졸였다. 옛날 같으면 애먼 며느리에게 시선이 쏠렸을 터, 그저 안쓰러운 눈빛만 오가던 시간이었다.

뜻밖의 곳에서 길이 열렸다. 지인이 아들네 아파트 단지 어린이집 원장으로 부임했다.

“우리 애도 보육교사 자격증 있다던데….”

그 말 한마디가 이렇게 먼 곳까지 닿을 줄은 몰랐다.

아이들을 돌보던 며느리는 한 남자아이를 ‘선생님 아들’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깊이 마음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렵게 얻은 자리를 내려놓았다.

힘겨운 시간을 건너야 했다. ‘내 아이’를 품기 위한 시간은 길고 멀었다. 두 번의 실패를 눈물로 삼켜내던 그 시간을, 나는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처럼 두 생명이 찾아왔다.

그렇게 온 아이들이 어느새 초등학생이 된다. 이 작은 기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데, 제 몸을 내어 아이를 품어낸 어미의 마음은 얼마나 깊었을까. 문득, 사십오 년 전 봄이 떠오른다.

나는 초등학교 일 학년 담임이었고, 동시에 한 아이의 엄마였다. 운동장에는 이백 명이 넘는 아이들로 북적였지만, 그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내 눈에는 오직 내 아이 하나만 보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나 역시 서툴고 간절한 학부모였다.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던 마음은 떨림이었고, 끝내 ‘기도’라는 말로밖에는 다 설명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큰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맞은 첫 식목일이었다. 초등학생일 때는 육 학년이면 제법 어른 구실을 했다. 삽을 들고 흙을 파고, 나무를 심으며 선생님 곁에서 일을 거들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자, 식목일에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 학년은 너무 어려 시킬 수가 없어요.”

담임선생님의 말이었다. 엊그제까지 가장 컸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가장 작은 아이가 되어 있었다.

일 학년은 세상을 여는 문이다. 같은 사람이어도, 새로운 문 앞에서 다시 작아지고, 다시 시작하는 자리. 새로운 삶의 문을 하나씩 열어가는 새로운 시작. 그리고 지금, 내 손주들이 그 첫 문을 연다.

사십오 년의 시간을 건너, 나는 다시 그 봄에 선다. 이제는 할머니의 이름으로, 조금 더 오래 살아본 사람의 마음으로 조용히 두 손을 모은다. 이 마음이 내 손주들에게만 머물지 않기를. 이 봄, 인생의 첫 문을 열고 들어가는 세상의 모든 일 학년에게 닿기를 바란다.

너희가 걸어가는 길 위에 햇살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기를.

세상이, 너희에게 조금은 더 다정하기를.

사십오 년 전에도, 그리고 오늘도

내 기도는 그 하나다.

아이들이 처음 서는 그 자리마다, 봄이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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