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에서 또다시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했다. 다수의 주택을 보유한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채 연락이 두절되면서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일부 피해는 안산을 넘어 용인, 시흥, 화성 등 수도권 전역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같은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사회가 받는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전세사기는 이미 여러 차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고, 정부와 지자체 역시 예방과 대응책을 마련해 왔다. 안산시 또한 ‘전세 피해 예방의 날’을 지정하고 대학가 중심 캠페인을 확대하는 등 사전 대응에 나선 바 있다. 겉으로 보면 대응 체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 체계가 실제로 작동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했고, 그것도 결코 소규모가 아니다. 예방 정책이 존재함에도 피해가 반복된다면, 문제는 정책의 유무가 아니라 작동 방식에 있다. 형식적인 홍보와 안내를 넘어 실제 거래 단계에서 위험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작동했는지가 핵심이다.
특히 이번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임대인의 성격이다. 흔히 전세사기는 단기간에 주택을 대량으로 매입한 ‘투기형 임대인’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임대인은 오랜 기간 임대업을 이어온 인물로 알려졌다. 이는 기존의 위험 판단 기준이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드러난 것은 하나다. ‘얼마나 오래 했는가’는 더 이상 안전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장기간 운영된 임대사업자조차 검증하거나 관리하지 못하는 구조라면, 현재의 예방 체계는 근본적으로 한계를 안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오랜 기간 유지된 거래 관계가 신뢰로 오인되면서 위험이 더 늦게 드러나는 구조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다른 문제는 계약 과정에서의 정보 격차다. 피해자 상당수는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고, 임대인의 재정 상태나 권리 관계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 문제로 보기 어렵다. 등기부와 근저당 등 정보는 존재하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사회초년생과 청년층의 경우 계약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개업소의 설명이나 주변 권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문제 없다’는 단편적인 안내만으로 계약이 이뤄진다면, 구조적으로 위험을 걸러낼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결국 정보는 공개돼 있지만, 실제로는 비대칭적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공인중개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약 이러한 정황이 사실이라면, 계약의 최전선에서 위험을 걸러내야 할 단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단순한 정보 부족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행정의 역할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특정 임대인이 다수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구조, 그리고 그에 따른 보증금 위험은 사전에 포착 가능한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거나 경고하는 체계는 여전히 미흡하다. 위험 신호를 인지할 수 있음에도 이를 연결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예방은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피해주택 매입이나 금융 지원 정책 역시 사후 보완에 가깝다. 이미 발생한 피해를 일부 완화하는 데는 의미가 있지만, 새로운 피해를 차단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같은 구조가 유지되는 한, 유사한 사건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안산에서 발생한 이번 전세사기 사건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제도, 행정, 시장 구조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계약에 나선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발생했는가가 아니라, 왜 반복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전세사기는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구조가 유지되는 한 언제든 재현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사고’다. 그렇다면 대응 역시 달라져야 한다. 사후 수습이 아니라 사전 차단으로, 형식적인 예방이 아니라 실제 작동하는 관리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래된 임대인조차 막지 못한 시스템이라면, 그 책임은 더 이상 개인에게만 돌릴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