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예쁜 명함집이나 작은 수첩, 심지어 예쁜 파우치라도 생기면 나는 쪼르르 남편에게로 들고 갔다.

"여보, 이거 예쁘지, 당신 줄까요?"

"진짜 예쁜데? 당신 안 가질 거면 나 줘."

털털한 기질의 나와 꼼꼼하고 감성적인 그가 나누는 이야기다.

그는 특이하거나 예쁜 물건들을 유난히 좋아했다. 예쁜 손수건도, 외국 다녀온 지인이 사다 준 특이한 모양 손톱깎이, 예쁜 고깔의 향초, 귀여운 모양의 미니 가습기 등.

안방 침대 옆에는 흰색 3단 서랍장이 있다.

처음 이 서랍장을 들여왔을 때 한 칸 정도는 자기의 공간으로 쓰고 싶다고 해서 첫째 칸을 그만의 전용 공간으로 정해 주었다.

그의 서랍은 그렇게 만들어졌고 가족 누구도 자기의 물건을 그곳에 넣으면 안 되는 룰이 정해졌다.

아이들에게 심부름시킬 때도 "아빠 서랍 왼쪽 맨 아래의 작은 상자 좀 가져다줄래?" 그렇게 말할 정도로 그의 서랍은 그만의 고유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서랍 공간에는 남편의 수집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메모를 좋아하는 그답게 작은 수첩들과 잘 써지는 볼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드라이버, 계산기와 줄자, 귀마개와 이어폰을 담은 노란 파우치 등. 자신이 필요할 때 신속하게 찾을 수 있는 자기만의 물건들을 차곡차곡 잘 정리해 두었다.

어느 날 지인이 벙어리장갑처럼 생긴 분홍 때 타월을 주었는데 역시 특이해서 남편에게 가져다주니 반색한다. 역시 그의 서랍 한 켠에 고이 자리 잡고 있다.

그가 떠나기 직전까지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태블릿, 딸내미가 선물해 주었던 휴대폰과 수첩도 그 서랍에 자리 잡았다. 유품들을 정리하며 내가 그곳에 넣었는지, 아들이 거기에 두었는지 생각은 안 나지만 당연히 그의 물건이니까 그 서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식탁 옆 벽시계의 초침이 멈춘 걸 보니 건전지 수명이 다 된 듯하다. 자기 서랍에 크기 별로 건전지를 준비해 놓았던 남편이다. 그의 서랍을 열고 AA 사이즈 건전지를 꺼내며 남아있는 그의 손길을 느낀다.

진정 내 것이라는 게 뭘까.

작은 물건부터 제법 고가의 아끼던 소지품들, 심지어 자기 이름의 재산 목록까지도 어느 시점에는 정말 아무 의미가 없다.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기간은 이리도 짧은데 한정된 인생 에너지를 내 것 만들기에 너무 쏟으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조금 더 여유롭고 즐겁게 살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남편의 서랍 속 그의 것들을 바라보며 이제는 그의 것이 아닌 물건들에서 인생을 생각한다.

나의 것, 물건이나 소유를 넘어, 나의 신체와 나를 이루고 있는 어떤 생명의 에너지까지 나의 것이 아님을 생각한다. 그 무엇 하나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남편의 서랍 속, 수십 가지 그의 물건들은 하나하나 그 사람의 스토리와 그이와 함께했던 시간을 담고 있다. 그리고, 영원한 내 것이 없음을 알려주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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