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 강가는 벌써 강물에 몸을 씻고 명상하고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갠지스 강물에 몸을 씻으면 이승에서 지은 모든 죄를 씻어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가 한편에서는 화장한 유골 가루가 강물에 뿌려지고 있다. 문화라는 이름의 가공(架空)에 길든 우리들의 정서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은 ‘당혹감’이라고 했다. 이러한 당혹감과 충격은 현장을 떠나서는 만날 수 없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업무차 여행으로 인도의 델리에 한 달 남짓 머문 적이 있다. 인도는 어릴 때부터 알 수 없는 흥분을 주는 미지의 나라였다. 공중에 뜬 터번 두른 마술사와 피리 소리에 머리를 세우고 춤을 추는 킹코브라. 작은 상자에 몸을 구겨 넣는 요기들과 영화 〈신상〉의 장식이 화려한 코끼리. 콧소리 섞인 독특한 음악들과 바짝 마른 간디라는 위인이 사는 곳, 인도.

6월의 델리는 저녁에도 숨이 막힐 열기가 에어컨의 냉기를 뚫고 특이한 향기를 뿜어낸다. 마치 향신료가 섞인 분무기의 물 입자가 허공에 떠다니는 듯하다. 예약해 둔 타지마할 호텔에 짐을 풀었다. 무굴제국의 전통디자인을 한 호텔의 입구에서는 막 결혼식이 끝난 듯 쿠르타와 사리를 입은 젊은이와 하객들로 번잡하다. 그냥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유럽에서의 한 달 반, 피로가 극심하게 몰려온다. 방으로 돌아와 옷도 벗지 않고 몸을 침대로 던졌다. 누워서 보니 꽤 높은 천정에는 실링 팬이 덜컥거리며 불규칙하게 돌고 있다. 겨우 일어나 팬의 스위치를 내렸다. 마음이 좀 놓인다. 일어난 김에 옷을 벗어 옷장에 넣는데, 이크. 옷장 문을 열기 무섭게 아기 손바닥만 한 무엇인가가 내 앞으로 날아오른다. 뭐지? 새인가. 저런, 거대한 크기의 바퀴벌레. 급히 벨보이를 호출했다. ‘오브코르스 와이 낫뜨’을 연발하며 손쉽게 처리하더니 노골적으로 팁을 달란다. 이 녀석이 벌레를 일부러 넣어 놓았나? 그의 묘한 표정을 보니 애꿎은 의심이 든다.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여 1달러를 손에 쥐여주고 방문을 닫았다. 침대 위에서 잠시 잠들었나 보다. 이상한 인기척에 눈을 떠보니 아까 본 벨보이가 제멋대로 들어와 창문이며 벽이며 먼지떨이를 하고 있다. 냅다 나가라고 소리치니 비열한 표정으로 엄지와 집게를 비비며 또 팁을 달란다.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진정하고 또 1달러를 주었다. ‘방해하지 마시오’를 내걸고 문과 창문을 이중으로 잠갔다. 샤워도 해야 할 것 같은데 화장실에는 휴지도 걸이도 없다. 작은 수도꼭지와 스테인리스 대야 하나. 난감하다. 내일 눈 뜨자마자 숙소부터 옮겨야겠다. 온통 심사가 불편해져서 다시 옷을 껴입고 시트는 걷어버리고 잠을 청했다. 인도의 첫 밤은 길고 내내 불편했다.

출장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었다. 내가 다녀온 같은 인도가 맞나? 코에 상주하는 카레 냄새에 고개 흔들던 인도에서의 기억들 위로 새로운 호기심이 오랫동안 스멀거렸다.

요즘 나를 옥죄던 현실이 느슨해졌고 쓰지 않은 항공 마일리지도 30만 마일이나 남아있다. 기억 속의 갠지스강은 밤이 되면 한 줄기 긴 빛으로 변한다. 한 줄기 강물로부터 끝없는 시간의 흐름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 강가를 따라 새벽부터 황금빛 석양의 해 질 녘까지 해그림자를 따라 걸어보고 싶다. 밤이 오면 순례자처럼 의미 있는 일상을 별자리에 새기면서.

나이 들어 다시 읽는 책의 새로운 감흥처럼 다시 갈 여행지로 오랜만에 설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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