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생활미술

김영희 안산환경미술협회 이사

 

따뜻한 봄날, 들녘에 나온 두 시골 아낙네가 나물을 캐는 일에 정신을 쏟고 있을 때, 여인네들의 뒤태를 포착했다. 이파리가 땅에 붙어 있는 나물들이 보인다. 한 여인은 망태기와 칼을 든 채 허리를 굽혀 나물을 캐고, 또 다른 한 여인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머릿수건을 둘러쓴 두 아낙네,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경사진 비탈에 잡목과 돌멩이가 군데 군데 흩어져 있다. 멀리 가파른 산 하늘에 봄새 한 마리가 포드득 날아오른다. 윤두서의 대표적인 풍속화 <나물캐는 여인>이다.남존여비와 남녀유별이 지배하던 엄격한 사회에서 사대부 남성이 서민여성의 뒷모습을 그려낸 그림이다. 어떻게 이런 소재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여인네들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을까? 그는 틀어박힌 규범을 과감히 내던졌다. 스스로는 양반이었음에도 이론만을 따지는 것에서 벗어나, 소박한 생업의 현장을 직접 보고 들으며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풍속화를 처음 그리기 시작한 윤두서는, 서민을 예술의 대상이자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며 그들의 인생을 포착해냈다.

윤두서는 김홍도와 신윤복보다 반세기 빠르게, 백성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낸 선각자였다. 여기서 그의 실학자적인 면을 엿볼 수 있으며, 이는 후에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나물 캐는 여인>은 윤두서의 열린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으로, 실제 주변 여성의 모습과 자세를 관찰한 것을 토대로 사실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당시로써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서민의 나날을 그려낸 다른 그림들에도,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삶에 대한 존중, 노동자들의 힘든 세상살이에 대한 공감,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에게도 깊은 관심과 따뜻한 시선을 내어주는 휴머니즘이 담겨 있다. 윤두서의 그림에서는 높은 수준의리얼리즘도 드러난다. 끊임없는 관찰을 통해 완성된 그의 시선은 정밀하고도 예리하다. 이는 당시 최고의 비평가였던 남태웅이 <청죽화사>에 남긴 글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공재는 마구간 앞에 서서 종일토록 주목하여보기를 몇 시간이나 계속한 다음, 무릇 말의 모양과 의태를 꿰뚫어보아 털끝만큼도 비슷함에 의심이 없는 연후에야 비로소 붓을 들어 그렸다.”윤두서는 댜양한 자세를 취한 말을 많이 그렸다. 그 중 <유하백마도>를 보면, 상서로움의 상징인 백마와 옅은 바람에 살랑 나부끼는 버드나무 가지의유연함이 서로 잘 어울려 그림에 생동감을 자아낸다.

나무 아래에서 말이 뒷발굽을 살짝 들고 서 있는 순간을 잘 포착하여 백마의 늠름함을 표출해내는 솜씨는, 리얼리즘에 있어 윤두서가 다다른 완숙한 경지를 단번에 드러낸다.30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를 멋지게 평가하고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값어치 있게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양반들이 관념적인산수화를 그리고 중국의 시를 읊을 시절에, 서민들의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에는 큰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회화가 민중의 모습을 포착해내는 시점부터 미술과 사회는 함께 어울려 나아가기 시작한다. 용기와 애정을 가지고 발전의 주춧돌을 놓았던 공재 윤두서가 더욱더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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