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르츠>

심명옥 수필가

 

살면서 제일 많이, 오래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어떻게 살까.”에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 ‘장래 희망’을 묻는 학교 설문지에 답을 적어내면서 시작된 꿈을 좇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달린다. 될 수 있으면 직진으로 곧게 뻗은 길을 가려고 젊음을 바치고, 꿈과 색깔을 달리하는 건 포기하면서 삶을 살아낸다. 그러다 문득, 지나온 길을 돌아보거나 앞에 놓인 길을 바라보며 의문을 품는다.

답은 늘 과정 속에 있기에 쉽게 잡히지 않는다. <인생 후르츠>(감독 후시하라 켄시)는 여전히 질문 투성이인 삶에 대해 귀띔해 주려고 한다. 영화는, 87세의 츠바타 히데코와 90세의 츠바타 슈이치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았다. 200년 된 양조장 집 딸 히데코는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슈이치는 동경대학 요트부 주장을 맡을 정도로 요트 사랑이 남달랐다. 이 둘은, 전국대회에 나온 동경대 요트부원들이 히데코의 양조장에 묵게 되면서 만났다.

1950년의 일이니, 둘이 함께한 세월만 65년이다. 영화는, 이들의 모습을 건축가의 말로 요약해 가며 삶을 대하는 몇 가지 자세를 풀어낸다. “집은 삶의 보석 상자여야 한다.”(르 크로뷔지에) 옛 건축가의 말 그대로 두 사람이 사는 집은 보석 상자다. 사계절 내내 그들의 집에는 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해마다 채소 70종, 과일 50종을 직접 기르며 즐거움을 얻는다. 식물 앞에 붙은 각각의 이름표엔 기다리는 설렘이 가득하다.

새들을 위해 옹달샘을 마련해 주고, 건강한 땅을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남편은 모든 것을 격려해 아내가 자기 목소리를 내게 한다. 아내는 전폭적인 지지로 남편이 소신대로 살게 해 준다. 집에는 언제나 웃음과 따뜻함과 배려가 넘친다. 추억과 사람을 쌓아가는 15평의 집은 그 어느 궁전보다도 넉넉한 품을 가졌다.

“오래 살수록 인생은 더욱 아름다워진다.”(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끄덕끄덕. 연륜이 쌓여 저절로 알게 되는 인생 비법이 있다. 어려운 일을 견디고 기다리다 보면 열매는 결국 영근다. 히데코의 “사랑이란 걸 입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남편이 좋은 쪽으로 해주려고 해요.”라는 말은 치기어린 젊은 시절엔 발견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이다. 슈이치의 고백은 오래 함께 산 히데코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그녀는 내게 최고의 여자 친구입니다.” 늘 후대를 위해 땅을 건강하게 가꾸고, 조용한 이별을 할 줄 아는 부부의 모습은 아름답다.

아버지 가는 길에 만국기를 내거는 딸들은 인생의 참맛을 이미 아는 게다. “모든 답은 위대한 자연 속에 있다.”(안토니오 가우디) 전후, 경제 개발이 우선시 되던 시절에도 슈이치는 오늘날에 봐도 혁신적인 건축 설계도를 디자인하던 사람이다. 그의 디자인엔 숲이 있고, 계곡이 있고, 바람의 길이 있다. 고조지 뉴타운을 설계할 때 에이스였던 슈이치는 그의 꿈을 실현시키고 싶었지만, 싼 땅에 비싼 건물을 짓고 싶어 하는 정책에 결국 중도하차한다. 그러면서도 고조지를 떠나지 않고, 택지 300평을 분양받아 깎여나간 산 대신 집에 작은 숲을 만들 생각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노력하면 숲의 모양이 되지 않겠냐는 꿈을 안고 말이다.

사는 동안 계속 그는 차근차근, 천천히 자연의 집을 완성해 나간다. 자연을 품는 게 답인 줄 알고 끝까지 신념대로 사는 모습이 멋지다. 결국 슈이치의 디자인 철학을 원하던 이마리정신병원을 자문해주며 행복해하던 모습이 선연하다. 묵직한 키키 키린의 내레이션, 경쾌한 음악, 편안한 화면,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익숙한 질문을 던진다. 가끔 길을 잃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나면, 가닥이 잡힐 것도 같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깨졌던 수반을 수선해 놓은 장면을 보여 주며 영화는 다시 한 번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 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그러하니 실망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천천히,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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