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수필가 /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어머니는 다를 줄 알았다. 아버지가무능해서 어머니는 어려움을 홀로 이겨내며 다섯 남매를 키웠다. 그런 어머니였기에 며느리에게는 딸처럼 다정하게 대해 줄 거라고 믿었다. 믿는 도끼가언제나 발등을 찍는 것은 아니지만, 발등이 찍히는 날에는 처방하고 약을 발라도 여간해서는 아물지 않았다.

아들 하나에 누이와 여동생이 셋이라 나는 결혼을 포기하려고 했다. 넉넉한 집안도 아니고 부모의 생활 능력도 없어, 결혼하면 당연히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했다. 누이의 소개를 받아 아내를 만났다. 앞선 두 번의 맞선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에 극구 사양하다 떠밀리듯 나갔다. 할 말을 똑 부러지게 하는 당찬 여인이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해야 하는 달갑지 않은 자리였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두 사람을 연결해 준 건 볼링이었다. 아내는 개인지도를 받으며 한참 볼링에 재미를 붙이던 시기였다. 운동이 주는 자연스러운 터치와 웃음으로 우리는 급속하게

친근해졌다. 마음이 통한다고 느낄수록 불안했다.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면 헤어질 때 서로에게 아픔만 커질 것 같아 용기를 냈다.

결혼하면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내 처지를 솔직하게 말했다. 누구도 받아주지 않으리라 생각했기에 이별 통보나 다름없었다. 뜻밖에도 “부모님을 모시는 일이 대수냐? 모셔야 할 형편이면 모시는 거지.”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당연하다 말하는 아내는 천사였다. 극심한 처가의 반대에도 사랑이라는 힘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게 해 주었다. 축복처럼 이내 아이가 생겼다. 어머니는 임신한 아내에게 극진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집안은 온통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들의 첫 생일이 지나고 아장아장 걸을 때쯤, 어머니와아내의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사소한 일도 누이와 여동생에게 알렸다. 누이는 그때마다 그냥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 아내도 만만치가 않았다. 아들을 어머니가 돌보겠다는 조건으로 아내는 취직했다. 같이 있는 시간이 적으면 다툼도 자연히 적어지리라 생각했다.

출근하고 아내가 없는 집에 어머니 친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적적해하실까 봐 늘 냉장고에 소주와 맥주를 사다 놓았다. 아내와 내가 출근을 한 집은 어머니와 친구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낮부터 술판이 벌어졌다. 퇴근해 귀가할 때면 술에 취해 자는 할머니 옆에서 울고 있는 어린 아들로 아내는 눈이 뒤집혔다. 눈치도 없는 어머니 친구들은 끄떡도 하지 않고 매일 찾아왔고, 저녁이면 집은 전쟁터가 되었다.

두 사람의 전투가 시작되면 나는 아파트를 서너 바퀴를 돌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다 아직 휴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또다시 서너 바퀴를 더 돌아야 했다. 결국 모든 것은 내 잘못으로 귀결되었다. 술을 왜 사다 놓았느냐?, 당신이 줏대가 없이 어머니 편만 드니까 친구들이 매일 찾아오는 거라며 아내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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