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옥 수필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엔 정신 차리기가 힘들다. 온몸에 쏟아지는 햇볕에 취해 있다 보면 어느 새 계절은 지나있고, 지난 다음에 보면 자기도 모르게 훌쩍 자라 있게 되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다른 계절에 찍는 건 무의미해 아홉 해나 미뤄진 다음에야 <콜 미 유어 바이 네임>(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은 세상에서 빛을 볼 수 있었다.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제작된 영화는 강렬하고 아름답다. 잠시 눈을 멀게 만들 지경으로 그 빛은 찬란하다. 
1983년 이탈리아 북부의 한 별장, 매년 여름과 크리스마스 때 엘리오 가족은 이곳을 찾는다. 열일곱 살 엘리오는 고고학자인 아버지의 조수로 온 올리버가 신경 쓰인다. 자신만만해 보이는 침입자는 아는 것도 많고, 친화력도 갑이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하며 주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엘리오의 눈에 훤칠한 외모와 뛰어난 사교성으로 쉽게 녹아드는 올리버가 자꾸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스러운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눈치 챈 엘리오는 두루두루 사람들과 잘 지내는 올리버가 거슬린다. “나중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올리버가 예의 없는 거 아니냐고 괜한 트집을 잡기도 한다. 
반면 올리버의 감정선은 초반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를 성큼성큼 누비며 환화가 웃는 그의 얼굴엔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후에야 근육을 풀어준다며 엘리오의 어깨를 만진 게 의중을 떠 본 거라고 고백한다. 엘리오가 변태 취급을 하는 것 같아 밤마다 잠을 못 이루면서도 자기 감정을 숨긴 것이다. 공주와 기사 이야기의 결말을 궁금해하는 올리버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폭풍 같은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사랑하며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만난다. 설레고, 떨리고, 두렵고, 궁금하고, 상대가 더 멋져 보이고, 기쁘고, 고통스럽고. 어느 한 가지 색깔로 오는 게 아닌, 복잡하게 오는 사랑을 너무도 잘 담아냈다. 광장의 조각상을 사이에 두고 고백하는 엘리오를 멈춰 세우기 노력하는 올리버의 심경은 무거워 보인다. 결국 파도치는 감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 약속이 있는 자정까지 기다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사랑을 나눈 후 주도권이 바뀐 것 같은 묘한 긴장감까지도 떨림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사랑 그 자체다.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이토록 아름다워도 되는 건가.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영화. 배경과 음악,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제작진의 열정이 앙상블을 이뤄 빚어낸 최고의 영화 한 편이다. 아름다운 영화에 붙은 타이틀이 많기도 하다. 성장 영화, 첫사랑 영화, 퀴어 영화 등등의 분류에 넣어 이 영화를 단정 짓기는 힘들 것 같다. 엘리오 역을 해낸 티모시 샬라메도 사실 그 어떤 영화로 보여도 상관없다고 한다. 그는 배역이 결정되자마자 바로 이탈리아로 날아가 피아노와 기타를 배웠고, 영화 촬영이 번복될 위기에서도 이 배역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한 열정 덕분에 행복하게 영화에 몰입해 들어갈 수 있었고, 엘리오의 눈물에 함께 슬픔이 일렁이는 귀한 경험을 했다. 
찬란한 여름은 지났다. 거부할 수 없는 뜨거운 태양을 만났던 만큼 아픔이 깊다. 아픔이 깊다고 서둘러 사랑을 지울 필요는 없다. 엘리오의 아버지 펄먼의 말대로 둘은 서로를 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서둘러 아픔에서 빠져나오려고 감정을 소모하는 건 낭비이다. “지금은 슬픔과 아픔이 있어. 그걸 없애지 마라. 네가 느꼈던 기쁨도 말이야.” 펄먼의 말이 엘리오를 위로해 줄 것이다. 지난 여름날 같은 기적이 다시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그 기억은 두고두고 엘리오의 삶을 물들일 것임을 안다. 
‘Mystery of Love’ 가사가 자꾸 귓가에 맴돈다. 여름만 오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을 엘리오의 등을 두드려주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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