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승 자유기고가

곧 휴가철이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예전같은 분위기도 아니고, 장마가 여전히 우리 근처에 머물고 있어서 여느 해와는 다르게 실감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철이 돌아오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어린 시절에도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여름에 휴가 떠나는 것을 ‘바캉스’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는 정말로 궁금했었다. 우리 말 쓰기 좋아하고, 영어 쓰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이 여름휴가만큼은 유독 ‘바캉스’라는 프랑스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또 재미있는 것이, 가을, 겨울 등의 다른 휴가에는 전혀 이 단어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쓰는 ‘바캉스’라는 말은 ‘여름의 뙤약볕 아래 푸른 해변의 하얀 백사장에서 노는’ 그런 이미지로 고착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이 이미지에 같은 프랑스어 계열인 ‘비키니’와 ‘파라솔’도 함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이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이다보니 올해는 들떠 있지는 않지만 그래서 여름만 되면 사람들은 무슨 집단 의식이라도 치르듯이 휴가를 떠나곤 한다. 그리고 그 준비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계획을 짜야하며, 이동할 수단과 숙박과 식사, 옷가지, 비상약품들을 꼼꼼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휴가는 언제 어떻게 망쳐질지 모르는 아주 예민한 녀석이기에 사람들은 꽤나 분주해지고, 각종 바캉스 전용 상품이나 패키지 등도 넘쳐난다. 어쩌면 이 휴가라는 녀석이 말만 ‘쉬는 것’이지 다른 종류의 ‘노동’이기도 하다는 우스운 생각도 들 정도다.

그러나, 사실 진짜 바캉스라는 말의 뜻을 안다면 약간은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실제 프랑스어인 바캉스(vacance)의 어원은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다. ‘비우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 중에서도 ‘vac’이라는 부분이 ‘비어있는’이라는 뜻이다. 꽤나 생각할 거리를 주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동양 철학에만 있을 것 같은 ‘공(空)’이라는 개념이 서양인에게도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원래 휴가라는 것이 ‘비우는 것’이라는 개념에서 또 한 번 생각할 거리를 준다.

원래 휴가라는 것은 ‘스케쥴을 비운다’라는 의미기도 하고, 마음을 ‘비운다’라는 의미기도 한 것이다. 극성스런 우리 한국인들은 그 비운 공간마저도 어떤 계획으로 꽉꽉 채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향이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한 번쯤은 원래 바캉스라는 것이 ‘비우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여름 휴가를 집에서 보내시려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그래도 1년에 한 번 오는 시기니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어딘가를 다녀올 준비를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여름은 덥고, 준비할 것은 많을 것이며, 그래도 빼먹은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다 좋지만 올해는 더더욱 ‘비우기’에 충실한 바캉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그 중에서도 ‘마음 비우기’에 주안점을 주는 것은 어떨까?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난 어느 시절 못지않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구성원들이 각자의 사회적, 직업적, 경제적 위치에서 그만큼 어려운 시절을 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나 스트레스 받으며, 얼마나 골치 아프며, 풀리지 않는 문제는 왜 그렇게 많은가? 돈은 항상 부족하며, 직업이나 업무에 회의감도 들 것이며, 그만두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바캉스(vacance)의 어원은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다. ‘비우는 것’이라는 뜻이다.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당신의 생각과 정신을 잠시 비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바캉스의 본질이라는 말씀이다.

아무리 근사한 휴가지에 누워 있어도, 생각이 여전히 어떤 근심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휴가라고 전혀 볼 수 없다.

잠시 며칠만이라도 생각을 비우고 식힐 수 있는 여유와 낭만. 이미 우리는 이것을 몸으로 깨닫고 있으며 그것이 똑똑한 한국 사람들이 프랑스어 바캉스를 사용하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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