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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
반월신문 | 승인 2020.06.24 17:05
신현승 자유기고가

꼭 불교를 믿지 않아도 ‘보살’이라는 단어는 들어 보았을 것이다. 원래의 의미는 깨달음을 얻은 구도자를 뜻하는 불교용어지만, 그 바리에이션은 매우 넓다. 일례로 실제 우리가 절에 가면, 대부분 여신도나 여시주를 ‘보살’로 높여 부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엄연히 따지자면 잘못된 단어선택이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른다고 현대 한국에서는 그런 용법이 이미 꽤 견고하게 굳어져 있다.

그런데, 그런 종교적인 보살을 제외하고, 우리는 보살이라는 단어를 또다른 방법으로 유용(流用)하고 있다. 바로 ‘인내심이 보통 사람을 초월한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보살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유난히 참을성이 좋거나 관대한 사람들에게 반 우스개로 보살님이라 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여기서 약간 이야기를 돌리자면, 요즘 스포츠계에서도 ‘보살’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바로, 국내 프로야구의 한 팀이 18연패를 하면서 그 팬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팀이 아무리 못해도, 몇 년째 바닥을 헤매고 있어도, 꿋꿋하게 끝까지 그 팀을 응원하는 팬들, 야구계에서는 그들을 보살 팬으로 지칭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사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현세, 그리고 속세에 사는 우리들이 해탈의 수준에 도달하지 않은 이상, 아니 그렇게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이, 애초에 한 팀을 응원한다는 지극히 속물적, 속세적인 속성을 보이는 ‘팬’(fans)이라는 집단이 어찌 아무런 욕정(欲情)이 없는 보살이 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그저 분노와 실망을 삭히고 미래를 기다리는 것에 가깝다. 사실 그 ‘보살’들의 마음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있다는 것이 훨씬 더 맞는 표현이라 하겠다. 그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에 대한 미련이 없는 ‘보살’님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들인 것이다. 불교용어를 한 번 더 쓰자면, 그들의 불타는 진짜 속마음은 보살이 아니라 오히려 나찰(羅刹)과 야차(夜叉)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완전히 모르는 것도 아닐진데, 여전히 그들은 보살이라 불리고 있다. 즉,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는 단어인 ‘코스프레’를 사용하자면, 그들은 실제로 보살이 아니라 ‘보살 코스프레’중인 것이다. 원래 실제 마음을 숨기고 위장하고 있는 존재라면 그다지 긍정적인 모습이 아니겠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은 가식적으로 보이거나 밉상으로 비춰지지도 않는다. 왜일까? 그것은 비록 그들이 ‘괜찮은 척’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 분노의 삭힘과 해소법을 터득한 것이며.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사회적 성숙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숙함이 또다른 추가적인 사회적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예 우주의 섭리를 깨달아 해탈을 하면 부처가 되는 것이고 가장 수준 높은 일이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지 못한 우리 범인(凡人)의 수준에서는 이런 식으로 인간적이며 사회적으로 성숙한 모습으로 분노를 해소하고 절제하는 것은 그 안에서 꽤나 높은 수준의 사회적 모습이라고 보인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감정의 골과 그 대립, 갈등이 난무하는 사회다. 정치적으로 지역적으로 경제적으로 그 간극은 점점 더 커져가고만 있다. 그리고 그런 갈등과 분노를 여과없이 표출하는 밉상들이 곳곳에서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다른 제 2의, 제 3의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갈등과 감정의 낭비의 시대, 이런 시기, 프로야구의 한 팀 팬들의 지혜와 성숙함을 조금 빌려보고 싶다. 그것이 비록 코스프레일지라도 최소한 밉상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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