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군은 옷 속에 부적을 붙였다고 해요. 그 부적을 붙이면 총알이 피해간다고 믿었대요. 정말로 그렇게 믿었을까요. 아니요. 너무 무서우니까, 무서워서 한 발짝 떼기도 힘드니까 붙였던 거예요. 종이조각 하나지만, 아무 소용도 없는 걸 알지만, 그거라도 붙여야 한 발짝이라도 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붙인 것 아닐까요? 이 아무개들은 용감하게 싸운 게 아니에요. 두려워하면서 싸웠어요.’

우금치 전투를 앞둔 동학 농민군은 일본군이 갖고 있는 총을 봤다. 농사짓고 살다 죽창 하나만 들고 나선 그들은 잘 훈련된 일본군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 부적까지 붙이면서 싸운 이유는 오직 하나. 후손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겠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나는 두려워하면서 싸웠다는 이 글에 콧날이 시큰거렸다. 그들이 느꼈을 절절한 무서움에 가슴이 떨리고 손끝이 저렸다. 이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 삶은 훨씬 각박했을 텐데 왜 전봉준, 김개남, 손병희 등 지도자만 기억했을까.

동학농민군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에겐 의병이 있었고 4.19혁명 때 목소리를 낸 어린 학생들이 있었고 1987년 6월에 광화문 광장을 꽉 채웠던 시민들이 있었다. 촛불집회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어딘가에 있었던 나는 아무개의 한 사람으로 용감하기만 했나. 겁이 났다. 부질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함께 움직였더니 세상은 정말 바뀌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고 아무개들이 결정적인 순간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쓸모》(최태성 글, 다산초당)에서 글쓴이는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그 자신이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삶에서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눈에 역사적 사실을 빨리, 많이 외우는 일에 치중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더구나 시험만 끝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역사 공부가 허망하다고 투정을 부리니.

그는 다른 건 다 잊어도 괜찮으니 역사를 배우면서 느낀 감정 하나만 잊지 말라고 부탁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를 일본에 넘긴 을사오적에 대해 엄청나게 분노했던 그 기분을 기억하고 있다가 사회에 나가서 어떤 선택을 하거나 책임을 져야 할 때 떠올리라고 말이다.

이렇게 역사 속의 사람을 통해 ‘쓸모’로 나아가면 좋았을 것을 역사의 ‘실체’를 강조하는 바람에 재미없다, 고리타분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거다. 그래서 사람에게 집중한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더구나 익히 만나온 사람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서 있던 사람을 만나게 하니 더없이 반갑다.

어떤 만남이 좋았는지 헤아려 본다. 버려진 이야기를 모은 일연 스님이 고맙고 당나라로 끌려가서도 끝내 700미터에 가까운 거리를 날아갈 수 있는 화살의 비밀을 말하지 않은 구진천이 고맙다. 황룡사 목탑의 층마다 신라를 괴롭힌 주변국들의 이름을 새긴 선덕여왕의 바람에 목이 멘다. .

나는 인생의 답을 찾았나 되돌아보니 아직 갈 길이 멀다. 미련한 나를 극복하는 방법은 묻고 찾고 만나는 일일 거다. 혼자 가는 길이 힘들고 외로울 때 이 책의 사람들에게 답을 구하며 걷겠다. 아무개를 잊지 않는 세상, 아무개로 사는 삶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세상을 희망하며 힘껏 노래를 부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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