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돌아서 다시 마주선다. <동주>(감독 이준익)를 만난 건 한참 전이다. 그 때 파장이 커서 몇날 며칠을 뜨거운 가슴으로 있었다. 뭔가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정리해 두고 싶었는데, 차마 글 몇 줄로는 함부로 담을 수 없는 감정들이어서 그대로 덮어두었다. 나의 안일함을 간질인 걸까. 최태성의 책이, ‘무서운 시간’이란 노래가 마음을 툭툭 건드리며 역사 속의 시간을 헤매게 할 때마다 영화 <동주>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윤동주와 함께 영화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송몽규가, 이름도 알 수 없었던 수많은 그 시대 젊은이들이 생각났다. 이준익 감독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아픈 시대를 살다간 그들의 고민, 선택, 행동을 흑백필름으로 담담하게 그려내며 사람에 집중했다.

동주와 몽규는 사촌 사이로 동갑내기다. 둘은 어려서부터 한 집에 살면서 문학의 꿈을 함께 키우지만 성향은 서로 다르다. 동주가 차분하고 시 쓰기를 좋아하는 한편, 몽규는 활동적이고 산문 쓰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주로 몽규가 동주를 끌어가는 편이다. 동규는 시 좋아하는 동주를 위해 백석의 시집과 정지용의 시집을 구해다 주는 한편 문예지를 만들어 시를 발표하자고 한다. 열다섯의 나이로 둘은 동인지를 만드는데, 몽규는 확실한 뜻이 있었다. 순수한 문학을 하는 동주의 눈에 글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몽규는 낯설고 어렵다. 이 시기에 몽규는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나란히 연희전문에 입학하면서 둘은 다른 젊은이들과 함께 문예지 만드는 활동을 한다.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문학을 놓고 둘은 갈등한다. 여진의 말대로 동주가 시를 사랑하는 것만큼 몽규는 세상을 사랑한다. 열아홉 나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 부문에 당선된 몽규의 ‘술가락’(오늘날의 숟가락)에는 가난한 세상살이가 위트 있게 담겼다. 몽규는 세상을 일깨우는 도구로 산문을 사용했다. 시가 감상적이어서,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에는 산문이 좋다고 하는 몽규에게 동주는 일침을 가한다. 동주는, 자기 생각 펼치기에는 시도 부족하지 않으며, 마음속에 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는 것이고,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항변한다. 세상을 피해 문학 속으로 숨어든다고, 이념을 위해 문학을 사용하는 것은 시대의 조류에 몸을 숨기는 것이라고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이는, 문학을 놓고 이후에도 계속된 논쟁이기도 하다.

색깔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동행한다. 조선 땅에서 더 이상 우리말과 글을 사용할 수 없게 됐을 때, 둘은 일본 땅으로 떠난다. 일본에서도 몽규는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을 했다. 징집을 피하지 말고 들어가 세력을 키우자고 설파한다. 동주는 아픔을 시로 써 내려간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아파했던 동주의 시 구절마다 몸 둘 하늘이 없어 고뇌하는 시인의 모습이 배어 있다.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실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방법은 달랐지만 둘은 나라 잃은 설움에 맞섰다. 몽규의 말대로 ‘나는 총으로, 너는 글로’ 나라를 위해 싸웠다.

안타깝게도 시인 동주와 청년 문사 몽규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독립을 몇 개월 앞두고 목숨을 잃는다. 마루타가 되어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아가며 생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에게 할 수 없는 짓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자기네가 만들어 놓은 죄목에 서명하라는 일본인 형사의 태도가 꼴사납다. 문명국 운운하면서 우위에 서려는 태도는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렇게 여전한지. 일본의 민낯은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고작 해 봐야 50여년의 차이를 두고 태어난 삶은 질적으로 다르다. 당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는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고 죽어간 사람이 18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동주와 몽규가 있었다는 소리다. 주권을 위해 싸우느라 얼마나 많은 아무개의 희생이 더 있었을까.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들에게 숙명적으로 빚을 지고 살고 있다.

잊고 사는 건 무서운 일이다. 찾아 주는 이 없어 두 분의 묘지가 한때 어디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우리가 진 빚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하며 하늘과 바람과 별을 바라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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