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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필요해
반월신문 | 승인 2020.06.10 10:45

나는 식물과 거리가 멀다. 잘 키우질 못한다. 사막에서도 제 목숨을 버리지 않는 선인장이 우리 집에서 죽었다. 손으로 만져서 흙이 바슬바슬 흩어질 때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해 놓고 물을 주라는 말은 어제 저녁 밥상도 가물가물한 내겐 외계어 그 자체다.

한 눈에 반해서 들인 꽃도 오래 지켜 주질 못했다. 물과 친해야 한다는 말을 잘 따르다가 2박3일간 집을 비웠더니 그새 꼬꾸라진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뭐든 시들거나 죽는 건 차마 보기 어려우니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거둘 밖에.

그런 내가 야생화 수업을 들었다. 고작 다섯 번에 불과했지만 화분을 고르고 묵은 뿌리와 가지를 잘라낸 다음 새 화분으로 옮겨 심는 일은 무척 설레고 감격스런 경험이었다. 꽃뱀무, 미니해바라기, 향찔레 등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우리가 직장을 옮기거나 이사를 하는 게 쉽지 않듯 식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다고 마사토와 적옥토를 섞어 내밀어도 그들에겐 낯선 환경 아닌가. 게다가 그동안 의지했던 뿌리들이 사정없이 잘려나간다면 그 황당함은 당연한 일일 거다.

그래서 날마다 눈만 뜨면 베란다로 나갔다. 밤새 안녕한지, 꽃은 몇 송이나 폈는지, 잎은 시들었는지 살폈다. 그들이 앓는 게 보여서 그저 내 집에서 정 붙이고 잘 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내 눈엔 너만 보여.’란 말처럼 어느새 사랑에 빠진 거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 챈 지인이 내민 책, 《정원가의 열두 달》(카렐 차페크 글, 배경린 옮김, 펜연필독약). 꽃과 나무에 푹 빠져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이기도 하지만 평생 정원을 손수 가꾼 열혈 정원가이기도 하다.

그는 1월에 ‘날씨를 경작’하느라 빈둥댈 시간이 없다. 눈이 찔끔 내리면 새발에 피라고 투덜대고 많이 쏟아지면 많아서 전전긍긍이다. 서릿바람이 불면 한 대 쥐어박고 싶고 햇볕이 너무 강하면 싹눈이 일찍 터질까봐 애가 탄다.

2월부터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 진정한 정원가는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므로 열심히 흙덩어리를 부스러뜨리고 귀한 거름을 넉넉히 뿌린다. 6월엔 풀을 베고 8월엔 수시로 물을 준다. 꽃이 진 11월에도 화분이란 화분은 모두 꺼내 구근을 심느라 분주하다.

그는 왜 정원에 사는가. 수천 년간 이어온 자연의 법칙이 그곳에 있다. 제아무리 농간을 부려도, 그 어떤 혁명이 들이닥쳐도, 싹이 트는 시기를 앞당길 수 없고 장미가 4월에 피도록 만들 수 없다. 흙을 일구고 씨를 뿌려 꽃을 피우는 노동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고귀하며 심신에 이롭다.

나는 이제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을 이해한다. 초록을 가득 안은 사람은 겸손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일 거다. 미래를 위해 어린 자작나무를 기꺼이 심는 사람이 다른 생명을 허투루 넘길 리 있나. 그 삶을 따라가고 싶다.

그래서 작은 베란다가 아쉽다. 알량한 햇빛과 바람이 미안하고 깔짝깔짝 조심스럽게 물을 주는 것도 성에 안 찬다. 그가 거세게 뿜어져 나오는 물보라 가운데 마치 물의 신처럼 서 있었듯 충분히, 흡족하게 넘치는 내 마음을 쏟아 붓고 싶다. 남의 집 마당을 넘겨보는 마음이 안달이 났으니 어쩌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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