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와 틀리다는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밑도 끝도 없이 차별하는 일이 참 많다. 생긴 게 다르다고, 가진 게 다르다고, 좋아하는 게 다르다고 등등 이유도 제각각이다. 칠레 영화 ‘판타스틱 우먼’(감독 세바스찬 렐리오)은 위로받아야 할 주인공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철저히 현실적이다. 그동안 봐온 성 소수자를 다룬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캐롤’, ‘콜미바이유어네임’, ‘대니쉬 걸’과는 확실히 결을 달리한다. 문제에 에둘러 가지 않고 정면 돌파법을 선택한다. 57세 오를란드 오네트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이다. 그가 사랑하는 마리나는 자식 정도 나이의 트랜스젠더다. 둘의 달콤한 시간은 짧게 끝나고, 홀로 남겨진 마리나가 세상과 어떤 싸움을 해나가는지가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그동안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해 왔나 싶을 정도로 마리나에게 가해지는 차별은 폭력적이다.

자기 생일에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마리나는 타인과 사회로부터 전혀 위로받지 못한다. 단지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병원에서는 직접 데리고 왔고 보호자라고 하는데도 시신을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리나에게 넘겨주지 않는다. 가족이 도착하기 전에 경찰이 온 것으로 보아 신고까지 한 모양이다. 경찰은 마리나의 말을 믿지 않고 무턱대고 살인 용의자 취급을 한다. 오를란드의 동생 가보가 나타나 변호하는데도 경찰서에 불려가 탈의를 하는 신체적인 수모를 겪는다. 상실감을 달랠 기회가 없다. 그럴 때마다 쌓여가는 슬픔과 분노를 풀어낼 길이 없다. 기껏해야 연인의 몸체가 빠져나간 옷에 얼굴을 파묻고 슬픔을 달랠 뿐이다. 허공에 펀치를 날리는 정도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리나는 단단해진다. 비록 처음엔 허공에 펀치를 날리는 정도지만 결코 편견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오를란드의 전부인과 아들 브루노는 마리나를 치명적으로 흔들어댄다. 낮에는 웨이트리스, 밤에는 재즈바 가수로 활동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마리나를 기생하는 사람 취급한다. 마리나가 오를란드가 남긴 재산을 노리기라도 하는 양, 잽싸게 차를, 집을 빼앗아 가는 것도 모자라 모욕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전부인은 마리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보는 것도 모자라 키메라 같다고 대놓고 말한다. 브루노 일행은 장례식에 참석한 마리나를 납치해 모욕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조용히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 하는 마리나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 애도할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그녀. 그 모든 시련을 겪어내면서 마리나는 오히려 강해진다.

스토리를 담아내는 화면 구성이 참 인상적이다. 이과수 폭포수가 장엄하게 쏟아지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바로 이어 지하에 있는 목욕탕으로 초점을 옮긴다. 마치 자연과 인간의 세계 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번 등장하는 거울은 마리나의 내면을 비춘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그러지기까지 한 마리나의 내면은 끝 부분에 가면 또렷한 얼굴로 거울에 비춰진다. 영화 내내 초반에 죽은 오를란드의 영혼이 마리나를 따라다니는데, 이는 둘 사이 사랑의 깊이를 대변한다. 강풍에 온갖 쓰레기가 앞으로 날아오는데, 마리나는 끝내 쓰러지지 않는다. 이는 영화의 전체 색깔과 주제를 단적으로 전달해 준다. 내용을 전개해 가는 과정은 처절하지만 결국 마리나는 판타스틱 우먼이 맞다. 그녀는 불가능할 것 같은 현실에서 트랜스젠더로 당당히 홀로 섰다. 누구의 도움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 온갖 차별에도 사랑과 존재 앞에 우뚝 선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그래서 더 울림이 깊다. “하느님, 제게 무슨 잘못이 있나요?”라며 절망하던 목소리는 사랑을 지키며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한 다음 부드러워진다. 오를란드가 남긴 유일한 흔적, 개를 키우며 오페라 무대에 선 그녀는 감미로운 사랑의 그늘을 노래한다. 그런 그녀가 참 아름다워 보인다.

코로나가 잠잠해져갈 즈음 터진 이태원발 집단 감염 소식은 성소수자에게 무분별한 언어폭력을 가져왔다. 개인의 문제이지, 성소수자의 문제는 아니었음에도 질타하는 목소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향했다. 마리나 역을 실감나게 소화한 배우 다니엘라 베가가 커다란 눈동자로 화면을 뚫고 나와 말할 것 같다. “다르다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