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변해가는 것이 바로 얼굴이다. 이런 말이 있다. ‘40세 이전에는 부모가 주신 얼굴로 살고, 그 이후에는 스스로가 만든 얼굴로 산다.’. 그렇기에 진정 매력적인 얼굴은 40세를 넘어섰을 때의 얼굴이 아닐까?

자화상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어, 내면의 특질을 그림으로 표현해낸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던 조선 시대 유학의 풍조 때문에,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드물었다. 강세황과 윤두서의 자화상 정도가 알려졌을 뿐이다.

보물 제590-1호로 지정된 강세황의 자화상은 1782년, 본인이 70세에 다다른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옥빛 도포를 입고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이 앉아 있다. 얼굴은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들어간 눈, 움푹 팬 양쪽 뺨, 깊은 양미간 주름이 드러나게 표현된 얼굴이 보인다. 반면 콧대, 눈꺼풀, 광대뼈는 도드라지게 그려내어 명암의 관계가 강조되었다. 또한, 옷 주름의 풍성한 양감 표현이 돋보인다. 평면적으로 보이는 전통적 초상화와 비교하면 입체감이 훨씬 살아있는 그림이다. 《송도기행첩》에 서양화풍의 그림을 그렸던 경험을 이 자화상에도 녹여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림을 조금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 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관복을 입을 때 착용하는 오사모를 썼으되, 옷은 선비의 평상복인 도포를 입은 것이다. 일반적인 자화상에서는 관찰하기 어려운 복식이다. 운동복에 중절모를 쓴 것과 다름없는 모습, 그야말로 색다르고 톡톡 튀는 콘셉트를 만든 것이다.

사랑스러운 늦둥이로 자라나 장난기가 어린 본새가 보인다. 관료답지 않게 규범과 관습에서 벗어나 개성을 중시한 모습, 나이나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창의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강세황에게 빠져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 독특한 상황에 대해 자찬한 글을 보면,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수염과 눈썹이 새하얗구나. 머리에는 오사모를 쓰고 몸에는 야인의 옷을 걸쳤으니, 마음은 산림에 있으나 이름은 관리의 명부에 있음을 알 수 있구나.

가슴에는 많은 책을 간직했고, 붓의 기세는 오악을 흔드는 도다.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이 늙은이의 나이는 일흔이요, 호는 노죽이다. 이 그림은 스스로 그렸으며 찬문 또한 스스로 지었다.’라고 적혀 있다.

가슴 속 포부와 자신의 글솜씨까지 자랑하는 모습에서 드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강세황은 젊은 시절 학문과 예술에 전념하다가, 60세가 넘어서 관직에 올라 한성판윤, 병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늦은 나이에 공직에 종사하다 보니, 자유로운 전원생활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러한 내면의 이야기를 자화상으로 표출한 것이다. 참으로 기발하고 명쾌하다.

인생은 60세부터라는 말이 있다. 그때부터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말처럼 강세황은 인생의 전반전을 굳건히 잘 견뎌내고 때를 기다렸다가, 후반전에 인생 최고의 시기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자화상의 자찬처럼 튼튼한 자존감을 느끼며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즐거움을 만들며 하루하루를 잘 살아갈 때, 우리의 얼굴에도 건강함과 당당함이 멋지게 아로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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