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님이 평생 곁에 있어 주실 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고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고, 엄마는 제가 결혼해서 큰아들 10살, 작은 아들 4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사느라 바빠서 효도 한 번 못 한 게 후회가 됩니다. 제 나이도 어느 듯 중년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어머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5월 8일 어버이날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에게 달아줄 카네이션을 사느라 꽃집은 분주합니다. 비가 내립니다. 오늘 따라 돌아가신 어머님이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집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어버이날이라고 “돈이 별로 없는데 뭘 받고 싶냐?”고 하면서 평소에 안하던 청소도하고 둘이 돈을 모아 “엄마 저녁에 저녁밥 하시지 마세요. 엄마 해물 좋아 하시잖아요. 우리가 해물탕 시켜 드릴게요.”라고 한다.

5월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란 단어가 생각나는 가정의 달인데 평생 내 곁에 있어 줄줄 알았던 엄마는 지금 내 곁에 없습니다.

얼마 전 남편이 정년퇴직 한 뒤로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해서 자그만 텃밭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전 주말마다 둘째 아들을 데리고 남편이랑 텃밭에 가서 거름을 주고 비닐을 씌우고 고추, 상추, 브로콜리, 비트, 호박, 오이, 가지, 옥수수 기타 등 야채 20여 가지를 심었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밭에 쪼그려 앉아 흙을 덮고, 물을 주고 농사일을 하다 보니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났습니다.

‘이런 힘든 농사를 어머님은 평생하셨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어머님 생각이 나 눈물을 글썽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나를 본 둘째 아들이 내 손을 잡고 “엄마 울지 마세요. 농사가 정말 힘드네요. 공부 열심히 할게요”랍니다. 참 기특하고, 든든한 아들입니다.

엄마는 18살 어린나이에 시골에 사시는 아버님과 중매 결혼해서 10남매를 낳으시고 키우면서 농사일을 하셨습니다. 저는 4남 6녀 중 8번째로 태어나 위로 오빠가 셋 언니가 4명 여동생 하나에 남동생 하나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본 어머님은 머리에 비녀를 찌르시고 흰 두건을 쓰고 한복을 입고 항상 밭에서 일만 하시던 분이였습니다. 반면, 아버지는 인자하셨지만 일을 하시지 않으셨고 음주, 가무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로 집에 계시면서 동생이나 저를 챙겨 주셨습니다.

자식들이 많은데도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은 탓에 가족 생계는 엄마가 책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어머님을 저는 “밭에만 나가고 저를 챙겨 주지 않는다”며 철없이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어머님은 나이가 드셔서 8번째 자식인 저를 낳았습니다. 때문에 친구들 엄마는 젊은데 우리 엄마는 나이가 많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어머님이 선생님을 만나러 학교에 오면 화장실에 숨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창피하게 왜 학교에 왔냐?”고 어머니에게 상처 준 말이 지금 너무도 후회가 됩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살아보니까 엄마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자식은 많은데 일하는 것 보다 가무를 즐기시는 아버지 때문에 속이 얼마나 상했을까’

엄마는 여자로써 인생은 포기하고 오직 자식을 위해 살아 오셨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너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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