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였다. 남성과 여성 청소년이 있었다. 오빠는 16세였고 여동생은 13세였다. 남매는 온순하고 영민했으나 가정의 해체로 학습 결손이 컸다. 특히 오빠의 학습 결손은 심각했다. 그러나 중3학년 나이에 초등학교 학습지를 갖고 교사들과 고단한 씨름을 했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그 후에 대학에 진학하였다.

여동생도 잘 자랐고 역시 대학에 진학하였다. 당사자들의 피나는 고단함이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들의 사연들로 점철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지면에서 당사자들의 이야기 보다는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빛도 이름도 없이 수고한 교사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학원비를 받지 않고 공부를 허락한 학원 원장님들에게 경의를 보내고자 한다. 어른이 되어주셨고 사회적 부모가 되어주셔서 감사드린다. 우리사회에 가정을 만들어 주셔서 두 집 살림을 하신 분들이다. 감사드린다.

가정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인간의 형성과정에 가정의 문화와 환경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도 인정할 것이다. 코로나19로 많은 가정들이 위기에 처해있다. 임시직, 계약직, 시간제 노동자들이 가장으로 있는 가정들이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을 것인지 불을 보듯이 훤히 보인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앞장서서 지원하려고 해서 맘이 조금은 편하다. 부디 정치권은 조속한 결정으로 신속하고 실질적인 실행을 하길 바란다. 부디 바라기는 유세 떨지 말고 생색도 내지 말고 빨리하길 바란다. 원래 국민 돈이고 그런 일 하라고 집행자들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생명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패권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인류 최고 유산인 인간 존엄을 위한 신뢰와 협동 그리고 생명 중심은 돈 우상에 밀려 뒷전이 되었다.

이 현실에서 최고의 미덕은 돈을 향한 각자도생이다. 각자도생의 삶은 물신성에 주파수를 맞추게 된다. 이 삶은 우리를 늘 곤고하고 피폐한 상태에 머물게 한다. 피폐한 삶은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불안하게 하고 파괴한다. 이것이 우리가 만나는 현실이고 내 삶의 풍경이다.

코로나 19의 공포가 채 가시기전에 가정의 달을 맞는다. 코로나 19로 많은 비판을 받은 곳이 교회일 듯하다. 교회의 사명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으나 나는 생명의 생명력이 살아나게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교회의 존재의미이다. 한 달 전 교회 구성원 리더들과 긴장을 갖고 목회하던 한 후배를 만났다.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을 관내의 가정들에게 약간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목회자들이 30%의 월급을 교회에 헌금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 지도자들이 너무나 좋아하고 헌금이 집회를 할 때 보다 더 들어온다고 한다. 관계도 훨씬 개선되었다고 한다. 교회의 생명력이 살아난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혈연만이 아니다. 사랑을 나누고 사랑으로 만나는 모든 곳이 가정이다. 이것이 가정의 원점이다. 이 가정에서 생명력이 살아난다. 가정에서 생명력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살아나는 곳이 가정인 것이다.

5월에는 사회적 가정들이 봄날의 꽃들처럼 만발하길 바란다. 다양하게 나타나길 바란다. 그러면 코로나 19는 존재하나 우리의 공포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가정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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