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잎이 돋아나는 걸 보면 이젠 완연한 봄이구나. 다른 나무들이 앞 다투어 꽃을 피워내느라 수런거려도 감나무는 끝까지 늑장을 부리지. 초겨울까지 감을 매달고 있느라 힘이 빠져서 그런지 회복이 좀 더딘 것 같아. 감나무가 눈을 뜨면, 땅은 냉기를 완전히 털어냈다고 봐도 돼. 일 년 농사 요이 땅, 이때부턴 꾸물거리면 안 돼. 달력이 없어도 자연의 변화로 때를 알아내는 게 신기하지?

풋풋한 영화 한 편을 만났어.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농촌의 사계와 음식에 딱 네 나이대의 주인공이 겪는 방황을 잘 요리해 넣었더구나. 일본판을 리메이크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어. 사시사철 나오는 제철음식에 오꼬노미야끼가 나와 뜬금없다고 생각했는데, 그제야 이해하겠더라. 아무튼 영화에 나오는 음식들이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군침을 여러 번 삼켰어. 똑같은 요리가 아니더라도, 조그만 텃밭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흉내 내 볼 수 있겠더구나. 땅은 부지런히 움직인 만큼 먹을 것을 내놓으니까.

주인공 혜원이는 임용고사에서 떨어지고 시골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단 둘이 살던 곳인데, 엄마가 혜원이보다 먼저 가출하는 바람에 빈 집인 상태였지. 혜원이가 언 땅에서 배추와 파를 뜯어 와 된장국에 밥 한 술 말아먹는데 어찌나 달큰해 보이던지. 소박한 밥 한 그릇에 허기가 다 날아갔을 것 같아 보였어.

친구 은숙에게 배고파서 돌아왔다는 혜원의 말이 짠하더라. 혜원이가 툭 내뱉는 말을 은숙이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 한 마디에 혜원이의 그 동안의 생활이 보였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험을 준비했는데,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겠지. 자연에서 먹고 자란 혜원이는 편의점 도시락으로는 허기를 채울 수 없었을 거야. 네가 지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처럼 혜원이의 허기는 앞날에 대한 불안을 실어왔을 거야.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

혜원이 엄마가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 혜원이 엄마는 남편 요양차 내려왔던 시골에 혜원이를 심고 뿌리내리게 했다지. 힘들 때마다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다시 털고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야. 혜원이는 집으로 돌아와 추억 속 엄마의 요리를 만들고, 자연을 느끼면서 서서히 엄마를 이해하게 돼. 자연에 심고 기다리고 거두는 타이밍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기다림과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야.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와 사과농사를 짓는 혜원이 친구 재하는 이미 답을 찾은 것 같고. 나는 너에게 무얼 심어 주었을까. 네가 종종 뿌리던 씨앗들이 생각나. 넌 중학교 때 애니고를 가겠다고 했었지. 네 자율에 맡긴다고 하면서 엄마는 성적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족쇄를 채우고 말았어. 그 때 내가 네 길을 막지 않았다면 넌 지금쯤 답을 확실히 찾았을까.

혜원이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너도 찾을 수 있을까. 혜원이는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서 자연과 요리,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엄마의 작은 숲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려. 이내 자기에게도 숲이 필요하다는 걸 인식하지. 나에게도 숲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

나는 농부의 딸로 자라난 것을 무척이나 다행으로 여기거든. 주말에 감자 심고, 고추와 고구마 심을 흙을 만지고 왔더니,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사정에도 웃을 수 있겠더라. 자연과 가족, 그리고 글은 나를 지키는 숲이야. 너를 지키는 힘은 무엇일까. 그림, 가족, 자연?

영화나 문학작품에서 보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게 ‘리틀 포레스트’는 썩 괜찮은 영화야. 혜원이가 어떤 답을 찾았는지, 혜원이 엄마가 돌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20대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나 질문을 던지고 있거든. 게다가 배경이 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계절을 그림엽서로 받는 느낌이었어.

조금 있으면 사방이 초록으로 일어서겠다. 자연과 요리 프로그램 보는 걸 좋아하는 네가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 나랑 같이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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