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문 제160회 수필 공모 당선작-소금꽃이 아름다운 이유

아이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축하한다는 친구들의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들뜬 마음으로 사만여 원이 찍힌 등록금 영수증을 내밀었지만 어머니는 축하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이는 어머니의 깊은 한숨을 먼저 느껴야 했다.

등록 마감 날인 금요일까지도 어머니는 등록금을 주지 않았다. 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변통을 하지 못한 까닭이다. 토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구해진 등록금을 들고 아이는 월요일에 행정실(行政室)을 찾았지만 합격자 등록은 이미 끝나 있었다. 사정을 했지만 추가 합격자에게 통보한 상태라 등록할 수 없다고 했다. 소란스러운 상황에 교감 선생님이 나타났다.

“야! 이놈아. 공부만 잘하면 다야? 건방진 놈 같으니. 네가 학교를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등록 전까지 아무런 말도 없다가 이제 등록한다고 하냐?” 등록금이 없어 토요일에야 준비가 되었다는 변명을 듣고 선생님은 더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럼 전화도 못 하냐? 손이 없냐, 발이 없냐? 후기로 다른 학교 입학했다가 전학을 오든지 해.”

이장 댁에 겨우 하나 있던 전화기, 전화를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던 아이의 아쉬움은 그렇게 허무하게 덮였다. 원망했던 교감 선생님도 내가 미운 것이 아니라 등록 마감 후엔 추가 등록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후일에서야 알았다.

인천에서 자동차 정비센터에 근무한다는 동네 형이 같이 일하자는 말에 따라나섰다. 아이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해서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다. 말이 정비센터지 타이어 펑크를 때우는 작은 가게였다. 그 당시 타이어는 튜브를 넣은 것이어서 펑크 난 타이어 속 튜브를 꺼내는 것만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일주일을 버티고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어머니에게도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행상을 나가는 어머니는 저녁 늦게 돌아와 장성한 아들이 빈둥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염전일과 농사가 전부였던 시골에 공단이 조성되면서 개발이 시작되던 때였다. 누군가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 누군가는 지긋지긋한 극한의 노동인 염부일이 싫어 공장으로 취직을 했다. 당연히 염전에서 일할 인부가 부족했다.

극한의 노동인지라 겁이 났지만 아이는 염전으로 출근했다. 숙련된 사람과 초보자를 차등을 두고 임금을 책정했지만, 워낙 인부가 부족한 때라 초보자도 최고의 대우를 해 주었다. 공장의 한 달 급여가 7만 원이던 당시 염부의 임금은 10만 원이 넘었다. 그만큼 고되고 힘든 노동이었다.

아들의 염전 생활이 탐탁지 않은 어머니였지만 도시락을 넉넉히 챙겨 주었다. 염전에 다니려면 출·퇴근에 필요한 자전거는 필수였다. 자전거포에서 한 달에 얼마씩 갚아 나가기로 하고 외상으로 자전거를 샀다. 염전은 이월 한 달이 보수 공사 기간이다.

무너진 둑 보수, 결정지*의 까팡이* 교체, 난치*의 오물 제거와 물길 정비, 목도질*에 필요한 바구니와 물레방아를 돌려 물을 푸는 수차 수리 등 삼월부터 생산될 소금을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정도의 노동이라면 버텨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엄청난 인내를 요구하는 극한의 노동이 닥쳐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가소롭다고 혀를 끌끌 차며 비웃는 숙련된 염부들과 호통을 쳐 대는 반장의 악다구니가 염판*으로 나뒹군다. 꽉꽉 눌러 담은 소금 광주리를 어깨에 메고 나풀거리며 날아가는 숙련된 염부는 중심을 잡는다.

나비보다 우아한 걸음을 떼며 콧노래를 부르는 염부의 모습에 잔뜩 기가 죽었다. 광주리 하나에 고작 소금 한 삽을 퍼 담고는, 낑낑거리며 간신히 일어나 비틀거리다 몇 걸음을 떼지도 못하고 그대로 염판으로 내동댕이쳐진다. 힘도 모자라지만 요령도 없는 아이는 그저 넘어지면 일어나고, 다시 넘어지면 또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광대였다. 어머니 같은 여성 인부의 안쓰러운 눈길도 위로가 되진 못했다. 다만 이를 악물고 빨리 적응하는 것만이 버텨 낼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마당에 자리한 세면대에 펌프질해 올린 물을 세숫대야에 받아 세수한다. 찬물로 얼굴을 씻는 순간, 코에서 선지 덩어리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대야는 벌겋게 핏물로 범벅이 되었다. 깜짝 놀란 것은 잠시뿐 혹시라도 어머니가 볼까 봐 하수구로 핏물을 쏟아 버리고 다시 물을 받았다. 얼굴을 씻는 순간 또 한 번의 선지피가 코를 통해 쏟아졌다.

극한의 고통으로 담이 들어 벌벌 떨리던 몸은 버티며 견뎌내려고 발악을 하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피를 토하며 아이의 몸은 담으로부터도 차차 적응되었다. 목도질을 시작한 지 보름째 되는 날, 아이는 두 광주리에 소금을 가득 담고 거뜬히 일어났다. 숙련된 염부의 모습으로 염판을 유유자적 걸어갔다. 대견하다는 인부들의 시선에 아이는 우쭐했다.

벌겋게 달구어진 태양을 담은 바다 저수지 둑길로 뜨거운 바람을 받아내며 자전거가 달린다. 까맣게 그을려 반질거리는 피부와는 달리 유난히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아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 위로 밀짚모자를 쓴 채 퇴근을 한다.

하필이면 퇴근 시간이 학생들의 하굣길과 맞물려 있다. 누구에게도 아이는 자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아이를 부르는 친구를 애써 외면하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 뒤에 매달은 양은 도시락 속 숟가락과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달그락거린다.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난 안개꽃이 곱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염판의 결정지로 소금이 하얗게 알갱이로 맺힐 때 아이는 안개꽃이 몽우리를 푼다는 생각을 했다.

들판에 흔하게 핀 안개꽃이 자신과 닮았다고 여겨지며, 소금꽃이 안개꽃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는 꿈을 꾼다. 환한 미소에 까만 교복이 잘 어울리는 멋진 아이가 나타나는 꿈을.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