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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의 눈물
반월신문 | 승인 2020.01.22 11:18

햇빛은 프리즘을 통과하면 다양한 색채를 띤다. 하나의 색깔로 보였던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굴절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영화를 보아도 관객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사람의 파장에 따라 영화가 다양하게 전달되는 건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며 내는 여러 색깔과 마찬가지다. 작년 한해 스크린을 뜨겁게 달군 '조커'는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영화이다.

영화는 가상의 도시 고담시를 배경으로 한다. 청소부들이 파업을 해 시 전체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쥐들이 들끓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미쳐가고 있다. 주인공 아서 플렉은 어머니와 끝없이 계단을 올라가야 있는 허름한 아파트에서 둘이 산다.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 늙고 가난한 엄마를 부양해야 하는 아서의 어깨는 무겁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그가 정상인 척하며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아서가 살아낼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그에게 다가오는 일들은 모순투성이다. 뮤직샵을 홍보하는 도중 청년들에게 광고판을 빼앗기고 집단으로 매를 맞는다. 그럼에도 사장은 아서의 억울함을 귀담아듣지 않고 광고판을 물어내라고 호통 치기 바쁘다. 총을 판 동료는 문제가 되자 핑계를 아서에게 돌린다. 그 일로 아서는 쫓겨난다. 꾹꾹 참는 아서를 자극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쁜 일이 몰려온다. 전철에서 여성을 추행하는 금융가 직원 셋을 보고 웃음병이 도지는데, 병이 있다는 소리를 그들은 콧등으로도 안 듣는다.

결국 활화산이 터지듯 아서의 분노는 폭발하고 만다. 임계점을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용암처럼 아서는 인내의 안전핀을 뽑아 버린다. 탕탕탕! 가차 없이 가해지는 아서의 총성으로 세 사람이 죽고, 다음 날부터 세상은 이상하게 돌아간다. 개인적인 무례를 참을 수 없어 벌인 아서의 살인이 미디어에 의해 부유층에 대한 반감이 동기가 된 살인사건으로 둔갑해 버린다. 사건을 도화선 삼아 시민들이 ‘킬러 광대’에 열광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큰 바퀴와 작은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며 세상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서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시는 불타오르고, 아서의 분노는 자기를 무시한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총을 판 동료를, 코미디언이 되려는 자신의 진지한 노력을 조롱거리로 삼은 코미디 황제 머레이 프랭클린을 죽인다. 지금껏 존재 없는 사람으로 살아왔던 아서가 살인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며 조커로 거듭난 것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무성하다. 벌어진 일들이 망상이냐 현실이냐, 영화의 초점이 사회에 있냐, 개인에 있냐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온다.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없다로 의견이 나뉜다. 아무리 조커의 내면을 따라간다 해도 살인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분명한 건, 영화가, 정신질환이 있는 아서가 코미디언이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려다 실패했고, 우연에 의해 그가 부자들의 사회를 무너뜨리려는 영웅이 되는 슬픈 코미디라는 점이다. “난 내 삶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개 같은 코미디야."라는 조커의 자조가 딱 맞아떨어진다.

광대 분장을 하며 억지로 웃는 표정을 만들려고 하지만 눈에선 눈물이 고여 떨어지는 아서 플렉의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어려서부터 ‘해피’라는 이름에 갇혀 폭력을 당하면서도 억지웃음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아서, 아버지에게 안기고, 여자 친구랑 잘 지내고 싶어서 망상에 시달릴 정로로 현실에선 결핍이 많았던 아서, 병과 싸우며 코미디언이 되고자 안간힘을 썼던 아서, 약이 떨어져 불안해하던 아서, 살면서 단 1분도 행복한 적 없었다고 고백하는 아서.

영화를 본 후, 오래 전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목소리가 들리는 건 과몰입일까. 부모를 죽인 다음,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라고 절규했던 이은석의 목소리가 조커의 눈물에 겹쳐진다. 현실이든 영화 속이든 마음이 멍든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연민과 공감의 결여, 예의 없는 사회. 그 환경이 조커를 만들었다.”는 각본가의 말을 한참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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