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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남 화가의 치유일기-언제나 편안하고 포근한 어릴 적 친구
반월신문 | 승인 2019.12.11 18:37

필자가 다녔던 외사 초등학교는 위에는 괴산 댐이 있고 그 옆으로 강줄기를 따라 산막이 옛길 이라는 둘레길이 만들어져 이젠 알 만 한 사람은 다 아는 동네가 되어 버렸다.

산막이 옛길을 가려면 괴강다리를 건너 칠성 쪽으로 오다보면 송동리로 들어가는 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지나 오른쪽 첫 번째 마을이 양지마을이고 좀 더 올라오면 음지마을이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음지 마을이다.

초등학교를 갈려면 음지마을 옆에 성황당 나무가 있는 아주 무서운 명태재 고개를 넘어야 갈 수 있었고 중학교는 4킬로를 걸어서 가야 는데 1키로 정도 걸어가서 사공이 젖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다시 3키로 정도는 걸어야 했다.

남자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옛날 양반 동네라서 여자 아이들이 자전거 타는 것은 방정맞은 일이라며 어른들이 용납하지 않아서 걸어 다녀야만 했다.

착한남자 아이들은 우리의 무거운 책가방을 뒤에 자주 실어다 주곤 했다.

쌍곡 계곡을 휘돌아 흐르는 달천강가에 자리 잡은 칠성중학교는 넓은 운동장을 뺑 돌아 미루나무가 있었고 학교 옆을 흐르는 맑디맑은 달천강 강가에는 올갱이와 빠가사리 등 각종 물고기들의 황금 같은 터전이었다.

그 당시 우리의 최고의 간식은 올갱이이었다

두어 시간만 잡으면 조그만 소쿠리로 하나는 잡았다.

한여름 밥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아 놓고 모깃불 옆에서 늦도록 올갱이 까먹던 추억은 아마도 괴산 근방에 살았던 분들은 다들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해 마다 유월 말 일경 보리 수확기에는 보리 베는 논에 가서 보리이삭 줍기를 의무적으로 학교에서 시켰다.

필자는 다행히 미술부라서 농촌 봉사 대신 시원한 미루나무 아래에서 이젤 펴 놓고 그림을 그렸었고 사이클 부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사이클 연습을 했었다.

몇 주 전에 중학교 동창 친구들이 원주까지 병문안을 왔다.

몇 십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났던 것처럼 편안하고 포근한 것이 어릴 적 친구인가보다.

우리는 금방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 그 시절 궁금했던 이야기를 반백년이 넘어야 부담 없이 물어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김포에서 한의원을 운영 하는 한의사 변탁이는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는데 그 아이는 늘 말이 없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은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가 늘 아프셔서 돌아가실까봐 늘 불안하고 우울 했다고 한다.

점심시간이면 따뜻한 밥을 해서 도시락을 가져오신 현수 어머니가 난 부러웠는데 그분이 새 엄마라는 사실도 이제야 알았고, 그 시절 조금은 대찬아이로 기억되는데 순중이는 천상 여자로 변해 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원주 토정 추어탕 먹을까? 올갱이국 먹을까”

합창이라도 하듯 “올갱이국” 하하하하하하

오늘도 이렇게 고마운 어릴 적 친구들이 암세포 수백만 마리를 죽여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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