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어쩌다 보니 입동(立冬)이 지났다. 그야말로 만추(晩秋)의 시간이다. 온통 거리는 노란 잎과 빨간 잎으로 물들고 있다. 가을은 달리는 자동차를 잠시 멈추게 하는 신호처럼 잠시 멈추는 시간이다. 내가 어디를 향해 가는가? 잘 가고 있는지? 살피는 계절이다. 사람은 철새들처럼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아는 능력을 천부적으로 타고 나지 못했다. 그래서 열심히 살기는 했는데 나중에 보니 방향이 잘못되어 당황할 때가 종종 있다. 심지어 말년에 후회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을은 인간에게 매우 유익한 사색의 시간이다.

계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시간의 순서가 있다. 사람의 삶도 똑 같다. 청소년과 청년의 계절, 중년의 계절, 장년과 노년의 시간이 그렇다. 필자는 올해 60이다. 곧 61세가 된다. 인생은 60부터라느니 어쩌니 하지만 본격적으로 노년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필자는 노년의 시간에 들어서면서 스스로 몇 가지 다짐한 것이 있다. 첫째는 젊음을 흉내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이 먹은 폼을 잡겠다는 것은 아니다. 늙음에 대해 인정하고 서러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의식은 깨어있으되 젊게 살려고 젊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있는 것을 더욱 움켜쥐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의 자리를 젊은 사람에게 내어 줄 마음과 기꺼움을 가지려고 한다. 힘이 있다고 또는 안다고 나대지 않으려고 한다. 곧 떨어질 낙엽의 심정으로 살려고 한다. 무엇보다 땅으로 돌아갈 마음을 단단히 가지려고 한다. 두 번째의 다짐은 노년을 지혜와 성찰의 시간으로 채우려고 한다.

지혜는 다른 말이 아니다. 행복을 선택하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다짐이다. 무엇보다 사랑을 선택하고 생명력을 살리는 시간으로 살려고 한다. 이것을 잘 했는지 아니면 잊어먹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았는지를 기준으로 성찰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이 모든 것을 위해 사업을 생각하기 보다는 사람을 그리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땅은 모든 것을 품는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어 놓는다. 모든 것이 땅 안에 있다. 하나님이시다. 우리 모두는 그 땅으로 돌아간다. 가을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삶을 생각하는 풍경이다. 그 풍경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시간이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잘 가고 있는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라.

이것이 가을이 나에게 주는 속삭임이다. 무엇보다 겨울 앞의 가을이 주는 열매는 낙엽 일 것이다. 얼마나 멋진가! 잘 떨어져야 한다. 운이 조금 좋아서 조금 더 매달려 있어도 괜찮지만 애 쓸 일은 아니다. 단연코 그것이 아닌 이유는 가을에는 잘 떨어지는 것이 임무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의 아동, 청소년은 봄의 기운으로 살아간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인류가 지속되는 유일한 힘이다. 이 원리는 계속되어져야 한다. 이것을 위해 나무 잎들은 열심히 광합성과 호흡을 하며 양분을 만든다. 그 일들이 끝나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루를 잘 산 사람이 그날의 잠을 잘 잘 수 있고, 일생을 잘 산 사람이 잘 죽을 수 있다. 남은 노년의 삶을 잘 살아야 한다. 젊음을 흉내 내지 말고, 사람을 살리고 사랑하는 일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가을이 주는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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