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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보이는
반월신문 | 승인 2019.07.09 18:43

흔하디흔한 명옥이라니. 반에 이름 같은 친구가 꼭 있었기에 큰 명옥으로 불리기를 여러 번, 내 투정은 엄마에게로 향했다. 엄마는, 이름이 얼마나 예쁜데 볼멘소리를 하냐며 도리어 나를 나무랐다.


엄마의 다독임이 있어도 내 이름을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선생님들이 헷갈려 하는 것도 싫었고, 배움이 짧은 부모님들이 아무 생각 없이 지은 이름인 것만 같아 귀해 보이지도 않았다. 상대적으로 흔하지 않은 언니와 오빠 이름이 좋아 보이고, 얼굴만큼이나 예쁜 친구 이름 연아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심지어 유명해지면 개명을 하라는 고등학교 선생님의 말을 들었을 때는 부모님을 원망했다. 이름에 ‘옥’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으면 팔자가 드세다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마구 지었구나 싶어 한숨을 쉬었다.


부족하다 싶으니 집착이 커갔다. 첫인상만큼이나 이름도 중요해 보였다. 이력서를 쓰는 난에 적어 넣어야 하는 이름 앞에서, 통성명을 해야 하는 순간에 서서 자주 망설였다. 까짓 눈 딱 감고 자신 있게 이름을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 좋은 프레임을 씌어 놓고 숨어들려고 했다. 이름을 달팽이 등짐이라도 되는 양 무거워하며 살아온 것이다. 한때 개명을 고민하기도 했다. 촌스러운 이름을 맘에 드는 것으로 바꿔 기분 좋게 내밀고 싶었지만 웬만한 사유로는 개명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지금처럼 국민의 행복추구권으로 인정되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나 개명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면 명옥이란 이름을 진즉에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까다로운 절차와 비용 때문에 개명을 포기하고 살다보니 이름 불릴 일이 점차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이름에 대해 둔감해졌다.


대신 나이테처럼 마음에 분명히 새겨둔 선은 있었다. 아이들 이름만큼은 좋은 뜻을 가득 담아 흔하지 않게 짓고 말리라고.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도 운명은 얄궂다. 이름 때문에 내가 자랄 때 한 고민을 우리 아이들이 똑같이 하고 있다. 서연과 유진, 흔해도 너무 흔한 이름이다. 예전의 철수와 영희처럼 어쩌다 보니, 두 아이 이름 다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고 말았다. 학교에 수업을 나가 보면 한 반에 꼭 있는 이름이 서연과 유진이다. 서연은 여자 아이 개명 1순위 이름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고 있다. 유진이란 이름은 성별 가리지 않고 두루 사용되고 있다.


뜻밖의 사실에 뒤늦게 당황한다. 왜 이렇게 흔한 이름으로 지었냐며 두 아이가 투덜댄다.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온 내가 받아들이기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몇 날 며칠을 한자사전을 뒤적이고 입말로 해 보며, 1993년 생 큰아이의 이름을 서연이라고 지었을 때 많이 기뻐했다. 20여년이 지나, 모든 국민이 아는 이름이 될 줄은 까맣게 몰랐다. 시부모님이 작명소에서 지어 준 작은아이 이름 유진은 이미 흔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름에도 연이 있는 모양이다. 끝날 것 같았던 이름에 대한 아쉬움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아이들의 불만을 대하며 뒤늦게 부모님의 마음을 새로 읽는다. 나처럼 부모님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름을 내게 주려고 마음을 다했을 게다. 얼마 전, 전각 도장을 새기려고 이름을 한자 한자 들여다보다 놀라운 발견을 했다. ‘명(明)’자에 들어 있는 해[日]와 달[月]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다. 해와 달이 세상을 비추는 빛에서 밝음으로, 또 이해로 확장되는 힘에 놀란다. ‘옥(玉)’은 또 어떤가. 단순한 구슬이 아닌, 다섯 가지의 덕목을 갖춘 최고의 물건이 바로 옥이다. ‘명옥’에 세상을 밝게 비추고, 이해하는 최고의 구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다니. 비로소 이름이 제대로 보인다.  세상 어느 부모도 이름을 함부로 짓지 않는다. 이제야 엄마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오래 된 의문을 말끔히 털어낸다. 내 이름 석 자에 담긴 의미를 깊이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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