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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빛
반월신문 | 승인 2019.06.12 09:33

봉준호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긴 〈기생충〉을 봤다. 호불호가 나뉘고 다양한 얘기들이 나오는데 나는 송강호가 연기한 아버지의 눈빛만 계속 들고 있었다. 반지하에 물이 찼을 때의 연기를 통해서 가장이 짊어져야 할 온갖 무게와 절망, 미안함과 자괴감을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읽다가 나간 책이 《나는 무슨 일 하며 살아야 할까?》(이철수 외, 철수와영희)라서 더 울컥 했으려나. 문화 놀이터 길담서원은 ‘청소년인문학교실’을 열고 그동안 길, 일, 몸 등 한 글자 인문학을 다뤘다. 이 책은 그 중에서 일과 노동만 담은 거다.

삶은 일과 노동을 통해 부단히 채워 넣어야 하는 빈 그릇과 같으므로 이 미완성의 작품을 어떻게 완성시켜 나가야 할지 촘촘히 그려 보라는 의미인 듯. 대학입시라는 외부의 목표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몽땅 소진당하고 있는 청소년에게 자신의 내부를 돌볼 여유를 가지라는 부탁이다.

판화가 이철수는 가족들을 고생시킨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고 미워했다고 고백한다. 가난한 살림이 싫어 겉돌다 우연히 책을 읽고 역사의 큰 변화가 평범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얼마나 크게 규정하는지 깨달았다고.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무능했거나 애정이 없어서 가족들을 고생시킨 게 아니라 개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아버지도 당하신 거라는 걸 알았다는 말이다.

어떤 부모라도 자식을 힘들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실직이나 불황 같은 건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 자기 책임이 아닌 것 등에 관해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과거의 나를 위로했다.

사십 대 중반에 번듯한 회사의 이사에서 실업자가 된 아버지. 미리 돈을 빼돌린 사장과 일부 임원은 수감생활을 한 뒤 잘 산다고 했다. 평생을 정직하게 살았다고, 유일하게 감옥에 가지 않은 임원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이후 아버지의 삶과 우리 집의 가정형편은 쭉 내리막이었다. 나는 그렇게 점점 초라해지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했고 싫어했다.

일과 노동은 의식주를 비롯한 인간 생활의 필수품을 얻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다. 그래서 다른 나라는 ‘임금의 역사’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노동의 역사’도 비중 있게 다룬다. 지위가 높거나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노동자가 아닌 게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이 모든 노동자고, 모든 노동자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나는 그걸 몰라서 아버지의 일을 홀대했다. 딸을 인문고에 보내지 못하는 능력을 무시했다. 그 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이렇게 뒤늦은 후회는 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요즘 청소년들이 부럽다.

알아야 움직이고 움직여야 바뀐다. 좋은 돈과 좋은 노동에 대해서, 인권의 시선으로 바라본 청소년 노동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한다.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강의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서 머릿속에 쏙쏙 이해되니까.

만약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갈 수 있다면 아버지의 눈이 까맣게 꺼지던 그 순간으로 가고 싶다. 나를 사랑했다는 걸 알고 있다고,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행복했다고 그 눈빛을 향해 말할 것이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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