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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자 수필-우리들의 이야기
반월신문 | 승인 2019.06.05 13:39

매일 아침의 출근길. 가로수의 초록이 짙어가고 담장 위의 붉은 장미가 여름을 성급하게 부른다. 나의 직업은 집마다 방문하여 렌탈가전의 점검 서비스를 하는 일이다.

담당 지역은, 역사가 100년이 훨씬 넘은 초등학교가 있고, 일제 강점기 3.1운동이 일어난 비석거리 그리고 안산읍성 및 관아 터가 남아 있는 작은 동네다. 도서관, 보건소, 마을 전시관 그리고 동네 사람들. 온종일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삶의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한다.

초등학교 옆 주택에는 팔순의 노모가 항상 반갑게 맞이해준다. 커다란 집에서 창문 너머 학교 운동장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한다. 일제하에 당신이 다니던 학교라며 바로 엊그제 일처럼 얘기한다. 비록 혼자 집을 지키고 있지만 자식들이 제 몫을 다하며 잘살고 있다고 자신의 노고를 은근히 자랑한다.

기꺼이 노모의 수고를 어루만져주었다. 전원주택의 마당에 들어서자 눈이 먼 늙은 개가 주인보다 먼저 반긴다. 중년의 고객은 젊은 시절에 컨설팅 사업으로 바쁘게 사느라 여유를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이제 남은 삶은 봉사단체를 운영하며 채우고 싶다고 한다.

뜨개질 자격증을 취득해서 제2의 직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수세미를 선물이라며 건넨다. 잠시 관아 터의 넓은 잔디밭에 앉아 휴식을 갖는다. 어르신 몇몇이 잔디밭의 휴지나 돌멩이, 동물의 배설물 따위를 줍고 있다. 시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클럽으로, 어르신에게 경제활동과 사회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용돈도 생기고 운동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만족해하신다. 다음 방문은 직장에 다니는 손녀와 함께 사는 노부부의 집이다. 중풍과 치매가 있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점심을 챙겨주고 있다. 할아버지도 집안에서 지팡이를 의지해야 할 만큼 몸이 불편하다.

느린 동작이지만 귀찮아하는 기색이 없다. 할머니의 약까지 챙겨 먹이고 나서야 혼자 식사를 하신다. 말없이 오가는 부부의 동작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서비스를 마치고 현관 앞에 놓아둔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내려오는 것으로 마음을 전했다.

마지막 방문은 아이만 있다는 고객집이다. 몇 번이나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다. 똑똑한 아이는 엄마와 통화를 하고 방문자의 확인을 마치고 문을 열어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문을 걸어 잠그고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엄마의 입장이 되어 엄마가 많이 미안하고 고마워할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사탕 몇 개를 쥐여 주니 깍듯하게 인사를 건넨다.

각자의 환경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이나 모습이 다르지만 하나하나 소중하고 귀한 삶이다. 삶의 기쁨은 늘 특별하거나 거창하지 않을 수도 있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만족하고 열심히 살다 보면 작은 기쁨들이 쌓여가는 것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선물 꾸러미를 안고 오는 기분이 든다. 매일 갈 곳이 있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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