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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 한지공예 작가-“한지공예는 나의 영혼…역사의 숨결 간직 하고파”전국한지공예대전에서 입선..작품성 알아줘 '감사'
한 작품 완성에 2개월 이상 소요…가격은 정성에 못 미쳐
안산시의회 등 2차례 전시회 개최…아직 가야할 길 멀어
최제영 기자 | 승인 2019.05.30 11:40

이인숙씨는 한지공예 작가로서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지공예에 대한 대중성과 상업성이 확보되지 않은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역사의 전통이 점점 사라져 가는 세태가 ‘가슴 아프다’는 표현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인숙씨가 인터뷰를 마치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인숙씨는 한지공예 작가로서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지공예에 대한 대중성과 상업성이 확보되지 않아 무척 아쉽다고 했다. 역사의 전통이 점점 사라져 가는 세태가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전국한지공예대전에서 입선을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그에 걸맞는 경제적 풍요는 빈곤, 그 자체라고 하소연했다. 한지공예는 자신의 영혼과도 같은 존재라며 죽는 날까지 이를 지키고 후진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안산시의회 등에서 2차례 개인전을 열었다는 그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정성에 비해 가격대가 너무 저렴해 작업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안산에 공예작가가 그리 많지 않다고 진단한 그는 관심이 있는 모든이에게 자신의 실력을 전수하겠다는 심정도 솔직히 전했다. 이인숙씨를 만나 한지공예에 얽힌 얘기를 들어봤다.

Q한지공예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9년 전인 2010년으로 기억된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한지공예를 접하는 기회가 있었다. 전북 익산으로 볼일을 보러 간적이 있었다. 길을 걸어가다가 한지공방을 들어가게 됐는데 한눈에 싹 반했다. 나중에 '쓰리정'이라는 간판이 세워졌지만, 그 당시는 간판조차 없었다. 공방에 있는 여러 공예작품을 구경하면서 '나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아마 이것도 어찌보면 인연이고 운명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바로 공방 선생님에게 당돌하게 말했다. '나도 배우고 싶다'고...그 당시 인연이 되서 만난 분이 바로 임은희 교수님이다.

Q순간에 이뤄질 정도로 한눈에 반했다는 건가.

-그렇다. 그날을 계기로 여러차례 익산 공방을 찾았다. 풀작업을 시작으로 정성껏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일반적으로 '취미와 적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한지야 말로 나의 손에 맞는 작업의 순간순간들이었다. 사실 종이 공예는 민간에서 발달한 실내 문화아닌가. 그 당시 한지의 성격도 알게됐고 역사도 눈을 뜨게 됐다. 일상생활의 소도구를 만들거나 사용하면서 형성된 종이 공예는 가정용 소품 공예라는 것도 깨달았다. 종이 한 장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Q적성이 맞았다는 것으로 들린다.

-어느정도 한지공예를 익힌 뒤 직접 내가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가 2016년 1월로 기억이 된다. 손거울을 만들고 보석함, 접시도 내손을 거쳐 한 작품이 완성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도 작품이 좋다는 칭찬을 들으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내가 만든 여러 작품을 보고 '참 보기 좋다'라는 말을 들으니, 때로는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도 했다. 그게바로 행복이다라는 생각도 했다. 사실 종이 공예품은 각종 상자를 비롯해 지도, 종이꽃 등으로 다양하다. 특히 한지를 꼬아 만든 공예는 그 형태와 용도가 다채로워서 그 자체만로 눈이 즐거웠다.

Q자격증을 취득해 전문작가로 발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 자신 스스로 전문 작가라고 하면 좀 건방지다고 말 할수도 있다. 하지만 나름 노력한 결과물은 분명히 있다. 2년 전에 한지공예 2급을 취득을 시작으로 1급 자격증을 따내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한지공예 사범 자격증을 취득해 강사로서 위치도 받아냈다. 이런 것들을 모두 2개월만에 끝마쳤는데 주변에서 대단하다는 칭찬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한지공예 작가 이인숙씨가 공방에서 한 작품을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Q공방을 차렸는데 수입은 만족한가.

-어려운 가운데 지난 4월 사동에 한지공예 공방을 차렸다. 하지만 어려움이 많다. 한지공예를 배우려는 수강생이 별로 없는 편이다. 어찌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역사의 전통이 서려있는 한지공예가 점점 쇠퇴해지는 느낌이어서 마음이 아프다. 안산에는 공방에 그리 많지도 않다. 실제적으로 정성을 쏟는 만큼 작품의 가격이 낮아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도 한몫을 하고 있다. 노력한 만큼 수익성이 따라와야 하는데 말이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2개월에서 많게는 3개월이 소요된다. 그러나 그렇게 혼을 바친 작품이 헐값에 팔리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많겠지만 한지공예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부분이 아쉽고 속이 상하다. 재료값이 비싼데도 그걸 인정해주지 않는 현실이 가슴아프다.

Q전국한지공예대전에서 입선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렇다. 2018년 5월 전북 전주에서 개최한 전국한지공예대전에서 입선을 하는 영예를 안았다. '늘푸름'이라는 이름으로 출품한 작품이었는데 나름대로 인정을 받아 기분이 참 좋았다. 심사위원들이 후한 점수를 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겸손한 자세로 고풍 넘치는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다.

Q개인 전시회는 몇번이나 했나.

-2018년 7월에 월피동 광덕시장 안에 있는 사회적기업 3층에서 '제1회 이인숙 한지공예 개인 전시회'를 가졌다. 총 60여점을 전시했는데 반응은 호의적이었지만, 판매실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도 한몫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전시회를 하기 위해서는 의외로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작품 하나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기본적인 돈이 들어간다. 때문에 어느정도 판매가 되지않으면 고스란히 작가의 손실로 돌아온다. 당시 쌀독, 미니삼단장, 미니삼단 서랍장, 손거울, 부채 등 대작도 전시했었다.

이인숙씨는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한지공예 개인전을 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지공예에 대한 무관심 등이 더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Q안산시의회에서도 전시회를 했다는데.

-2019년 3월에 안산시의회 본관에서 '제2회 이인숙 한지공예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때는 1회에 비해 작품수를 늘려 대략 75점 이상을 전시했다. 그 당시 입선 작품도 판매되는 등 나름 활기가 넘쳤다. 30점 정도 판매했다. 소문을 통해 일반인들이 안산시의회까지 달려와 작품을 구경하고 실제로 구입도 했다.작품을 판매할때 마다 느끼는 것은 모두가 나의 분신같다는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골격을 맞추고 도배지 작업에서 마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겉질과 풀바르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을 한다. 정성과 혼이 담겨있기 때문에 언제나 나의 분신으로 통한다.

Q한지공예의 애정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한지공예의 작품성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많아 아쉽다는 말을 우선하고 싶다. 우리 역사의 전통이 사리지는 세태가 안타깝다는 얘기다. 정성에 비해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한지공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다. 실망하지않고 이 길을 계속가려고 한다. 한지공예를 배우고 싶어하는 시민이면 누구나 환영하고 심혈을 기울여 가르치고 싶다. 한지의 고풍은 언제나 살아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Q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

-원래부터 예술성이 타고났다. 그리고 봉사의 정신도 배어있다고 자신한다. 어려서 부터 즐긴 노래는 지금도 나의 친구가 되고 봉사의 원천이 되었다. 트로트를 좋아하는데 요양원 등에 봉사를 나간다. 그 자체가 즐겁고 보람도 있다. 어려서 독창대회나 합창대회에 나가면 반드시 상을 타기도 했다. 한지공예나 내가 즐겨 부르는 트로트는 내 생활의 전부가 되어 준지 오래다. 봉사도 내 생활의 일부다. 지난 경기도체육대회와 장애인 체육대회 당시 주차관리 안내 등 봉사를 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싶다. 특히 보릿고개를 좋아한다. 그런 노래를 부르면서 한지공예의 힘든 부분을 이해하고 살아간다. 남편은 경찰 공무원으로 퇴직했지만 수년 전부터 암으로 투병중에 있다. 완치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한지공예를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인터뷰=최제영 大記者

최제영 기자  cjy1010@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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