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으로 스치는 모판이 반가워 얼른 핸드폰을 꺼내들면서 기억은 가뭇거리는 어린 시절로 달려간다. 모판만 봐도 즐거운 기억들이 솟아나나 보다. 금세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눈앞이 온통 초록이다.

봄철 이 즈음 농촌엔 활기가 돋았더랬다. 모를 쪄 논으로 내는 동안 마을 전체가 시끌시끌했다. 품앗이로 이 집 논에서 저 집 논으로 옮겨 다니던 사람들이 흥을 뿌리고 다닌 덕분이다. 나중에 교과서에서 배운 노동요 한 자락도 시골 공기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는다.

우리 집에서 모내는 날엔 흥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마을을 휘감아돌던 약간의 흥분 상태가 우리 집 부엌에 와 자리하면 어린 마음에 뿌듯해지기까지 했다. 노동의 고단함을 헤아릴 수 없는 동심은 잔칫날처럼 풍성한 먹거리며, 집으로 들어서는 어른들의 부산한 몸짓에 마냥 설렜다.

일꾼보다 밥꾼이 많았던 우리 집 모내기 날, 엄마는 준비를 위해 몇 날 며칠 장을 봐 왔다. 지금 생각하면 꽤 고단한 일인데도 기억 속 엄마는 오히려 즐거워 보인다. 기억에 오류가 있나 싶어 엄마에게 여쭤보니, 백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 밥을 해내면서도 힘든 줄 몰랐단다. 명절보다 더 큰 행사였단다. "우리 집 모 심는 날은 대단했지. 동네 사람뿐만 아니라, 지서, 면사무소, 농협 직원들까지 다 와서 먹고, 남은 음식은 싸가지고 가곤 했어."

문지방에 걸터앉아, 엄마가 마늘종다리볶음, 코다리찜, 멸치볶음 등을 그득그득 담아내던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보던 기억이 또렷하다. 더러 내가 반찬을 집어먹으면 맛있냐고 묻던 엄마 얼굴도 팽팽하다. 내가 맛있다고 하면, 엄마는 다른 집보다 우리 집 반찬이 맛있어서 밥꾼들이 많이 온다고 은근슬쩍 자랑도 잊지 않는다. 코 안 가득 음식 냄새가 밴다.

취기 오른 홍털보 아저씨는 일 하는 것은 안중에 없다. 품앗이임에도 일을 하기보다는 술 마시기를 일삼았던 수염이 길고, 얼굴이 붉었던 아저씨 모습도 우리 집 모내는 날 풍경 속에 그대로 박혀 있다. 탓하기보다는 으레 그러겠거니 하며 받아준 것은 그 시절 넉넉한 인심 덕분이었으리라. 엄격한 아버지도 슬쩍 눈감아 준 것을 보면 말이다.

기계화되면서 정물화가 되어버린 모내는 날 풍경. 간결해진 엄마의 손길 따라 내 기억도 멈춰버린다. 몸은 편해졌지만 떠들썩한 모내기 날을 회고하며 "그 좋은 날들은 다시 안 와." 하며 아쉬워하던 엄마 마음을 알 것 같다. 나누는 즐거움이 커 몸의 고단함을 아랑곳하지 않았던 엄마에겐 줄어든 일꾼이 못내 서운했을 거다.

지금은 고향땅 논에 건물이 들어서서 초록색 들판을 보기 힘들다. 찍어놓고 보니, 사진 속 풍경도 낯설다. 스크린골프장이 서 있는 저곳도 예전에는 논이었는데, 이젠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논이 있다. 아버지 논 전체에 건물이 들어섰는데 더 말해 무엇하리.

그럼에도 단숨에 달려가는 일상 속 특별한 그 하루. 파릇한 모판 하나로 알 수 없이 달뜨는 것은 유년의 기억이 따스하고 행복했기 때문이리라. 엄마뿐만 아니라 내게도 의미 있던 '그 좋은 날들'을 꺼내 보며 모처럼 모내는 날 속에 앉아 쉰다.

돌아보면 언제나 지금보다는 훨씬 젊은 그 좋은 모내는 날, 앞으로 얼마나 더 꺼내볼지 모르겠지만 새삼 나고 자란 땅이, 느리게 가던 시간이 고마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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