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뜨개질 바구니에 담긴 금목걸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아랫방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목걸이를 풀어 놓지 않았다면, 그 때 내가 심부름을 가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도둑질은 나쁘다는 걸 알만 한 나이였다. 옆집 아이가 우리 집 돼지저금통 세 개를 훔쳤다가 매를 팥떡같이 맞는 걸 보며 얼마나 비웃었는지. 그런데 내가 그 짓을 한 거다. 예쁘다는 생각에 혹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아는 사람이 공짜로 줬다고 한들 누가 믿겠는가.

다시 갖다 놓을 기회를 엿보다 해는 저물고 이튿날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할머니는 철철 우는 나를 “그럴 수 있다. 너와 나 둘만의 비밀로 할 테니 앞으로 그러지 말아라.”라는 말로 다독이셨다.

그 날 느낀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하면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는 수치심은 이후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만들었고, 그럴 수 있다며 용서해 준 할머니의 얼굴은 두고두고 닮고 싶은 모습이 되었다.

《속죄》(이언 매큐언 글, 한정아 옮김, 문학동네)를 읽으면서 만약 내가 끝까지 발뺌을 했다면 그 끝은 어디였을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컸을까 상상해 본다. 인정하면 밤잠이 편할 일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망가지는 사람을 여럿 본 탓이리라.

브리오니는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의 관계를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 로비는 언니를 추근거리는 질이 나쁜 남자. 마을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자 유일한 목격자인 브리오니는 로비를 성폭행범으로 지목한다. 촉망 받는 의사 지망생에서 파렴치한이 된 그는 모든 것을 잃는다.

나중에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브리오니. 그녀는 로비를 찾아가서 사과하지만 정작 사건의 정황을 알리라는 부탁은 미룬다. 결국 로비는 전쟁 중에 입은 상처로, 세실리아는 런던 대폭격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다.

세월이 흘러 브리오니는 유명 작가가 됐다. 뒤늦게 과거의 진실을 담은 책을 발간하려고 하지만 진짜 성폭행범이 실력자가 되니 쉽지 않다. 아마 브리오니가 죽고 성폭행범까지 죽으면 발간이 되려나. 그녀는 글 속에서 둘에게 행복한 삶을 주었다는데 위안을 삼는다.

정작 당사자는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었는데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투덜댔다. 브리오니가 모든 것을 일찍 인정했다면 두 사람의 비극도 없었을 거고, 성폭행범은 평생 전전긍긍하며 살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녀 자신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떻게 느낄까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의 본질이며, 동정과 연민의 핵심이고, 도덕성의 시작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끌린다. 이 책이 그의 작품 중 최고로 꼽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듯싶다.

할머니는 내 눈물을 보곤 바윗돌에 눌려 설친 밤을 단번에 아셨겠지.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아는 지혜라니. 내 부족한 점과 앞으로의 길은 보이나 타인의 잘못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숙제다.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주억거릴 그런 날이 내게도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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