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 글, 김남주 옮김. 민음사). 말줄임표 세 개가 가슴을 훅 치고 들어온다. 작가는 왜 물음표가 아니라 점 세 개로 이루어진 말줄임표로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을까.

젊은 변호사인 시몽은 열네 살이 많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폴에게 반한다. 하지만 폴은 이미 로제라는 애인이 있다. 로제는 익숙함과 편안함에 종종 싫증을 내는 남자. 그럼에도 폴은 로제와 헤어지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흔히 말하는 연상연하 커플의 사랑 이야기,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힘겨루기로 보기 쉽지만 절대 아니다. 프랑스 문단이 작가를 ‘매력적인 작은 괴물’이라고 부른 이유는 인간 내면의 간극과 관계의 간극을 꿰뚫는 통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랑의 영원성이 아니라 덧없음을 얘기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단다.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 갑니다.” 그래서 심오한 철학이나 참여 의식 대신 불안정하고 미묘한 사람 사이의 감정을 담아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시몽은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폴에게 편지를 보낸다. ‘오늘 6시에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모차르트도 아니고 브람스라니. 거절을 당해도 핑계로 삼을 만한 구실이 충분한 데이트 신청이다. 실제로 그녀는 젊은 시절에 그런 치기 어린 질문을 받곤 했다.

그런데 가볍게 넘겼던 질문이 그녀를 흔든다. 현실을 바라보니 책과 음악은 멀리 떨어져 있고 하루의 대부분을 자기가 하고 있는 일과 늘 부재 중인 남자를 생각하는 일에 쓰고 있지 뭔가. 자아를 잃어버린 상실감이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비로소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나는 이 부분을 오래오래 되새겼다. 누군가 내게 직접 물어온 질문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긴 시간 몰입해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젊은 날에 나는 무엇에 사로잡혀 있었던가. 어디에서 위로를 받고 의미를 찾았던가. 영화와 연극을 참 좋아했었다. 큰 상을 받은 영화는 꼭 챙겨봤고 팸플릿을 사서 오랜 시간 감흥에 젖곤 했다.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은 왜 그리 비쌌던지, 꼭 보고 싶었던 배우가 세 명 있었는데 결국 한 명은 보지 못하고 젊은 시절이 갔다.

열정을 잃어버리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말줄임표 세 개를 문신처럼 새기고 시들부들 늘어진 삶을 바짝 세운다. 주말에 뮤지컬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예매한 것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 껌값에 볼 수 있는 티켓을 / 부적처럼 붙인 채 / 담쟁이덩굴이 뒤덮인 / 세실극장을 바라보았던 / 나를 감동시켜 줘, / 한 달을 견딜 수 있게 / 지금도 어떤 시절일 텐데 / 감탄사를 잊어버린 / 나의 밋밋한 손은 / 싼값에 준다는 표 한 장을 / 쉽게 받아들지 못한다 / 이 물음이 내게 온 이유, / 연극을 좋아하세요... (연극을 좋아하세요..., 황영주)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