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쓴맛이 내일의 희망…인생 삼모작 시작”

강성호 전 상이군경 안산지회장은 ‘효 인성 행복 강사’라는 직업으로 변신해 있었다.
12년간 지회장을 역임하고 보훈단체에서 이름을 알린 그는 두번에 걸친 신장 이식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한번은 남동생에게서 또 한번은 딸에게서 받았다고 했다. 부리부리한 눈매가 특징인 그는 이제 인생의 여러 쓴맛을 본 이상 효 인성 교육에 마지막인생을 걸겠다고 했다. 인생의 삼모작을 시작했다는 강 전 지회장은 특이한 제목의자서전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요즘 근황을 소개했다. 그 이름은 ‘꼴값을 떨어 봐’라는 자서전이라고 했다. 그는 상이군경회 안산지회장을 그만 뒀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상이군경회가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그런탓에 지금도 안산시 상이군경회 대외협
력본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화랑유원지에 세워진 ‘호국국가 유공자 공적비’는 자신의 공적중에 하나라고 소개했다. 효 인성 행복강사로 변신한 그를 선부동에 위치한 보훈회관에서 만나 진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상이군경 지회장 12년…화랑유원지 공적비 보람
신장이식 두번, 남동생·딸에게서 받아…난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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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청소년은 우리 모두 희망

자서전 ‘꼴값을 떨어봐’ 집필중…내가 사는 이유 알고파

 

강성호 전 상이군경 안산지회장은 '효 인성 행복 강사'라는 직업으로 변신해 있었다. 12년간 지회장을 역임하고 다양한 보훈단체에서 이름을 알린 그는 두번에 걸친 신장 이식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강성호 전 지회장이 인터뷰에 앞서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최제영 大記者


 

 

 

Q상이군경회 안산시 지회장이라는 명함이 익숙하다.

-그럴 수도 있을 거다. 상이군경회 안산시 지회 사무국장을 거쳐 12년간을 지회장을 했으니 말이다. 상이군경회는나의 혼이나 다름이 없다. 대한민국 특전사 부사관으로 22년을 근무하고 1992년에 전역한 뒤에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하다. 나는 국가 상이유공자 3급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중앙대의원과 안산시 보훈단체협의회장도 역임했으니 보훈단체와는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로 보면된다. 그래서 지금도 상이군경 안산시 지회 대외협력본부장 직함을갖고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조직이라 그런지 늘 곁에서지켜주고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Q화려하고 고상한 직업으로 변신했다.


-'효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을 오래전 부터 신앙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그래서 인생의 삼모작으로 시작했다. 그동안 사회복지사, 노인건강사, 다문화 가정사 등을 공부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효 인성이라는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효 지도사, 인성교육 지도사, 성 교육 전문강사,폭력예방 지도사, 진로 코칭 지도사, 스피치 지도사 등을 연구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했다. 물질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행복해 질수 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다. 그동안의 인생도 후회없지만 이번에 시작한 효인성 강사로 마무리를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Q어떤 방식으로 강의를 하고 있나.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학교와 기관 등을 방문해 인성강의를 해오고 있다. 안산시 중·고등학교와 대안학교 등에42회에 걸쳐 인성강의를 했다. 안산보호관찰소에서 특별 강의도 하고 수원보훈지청 행복 국가 유공자 강의도 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수원 보훈복지 문화대학에도 나가 강의했다. 교육 공무원, 안산도시공사, 농협에도 나가 인성 덕목 강의를 진행했으며, 시민대학 평생교육원노인대학 등에도 미투와 청렴교육을 실시했다. 지금은 성산효대학원 대학교 효 인성교육연구소에서 강사로 나가 열심히 강의를 하고있는 중이다.

 

Q효 인성 강사가 된 동기가 궁금하다.


-현 시대를 보면서 나부터 자각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나는 평생을 대한민국 군인으로 살아왔고 전역후에도 상이군경회에서 일을 해 온 사람이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실을 목격하고 나서 나부터 반성을 하게 됐다. 1등 제일주의와 개인 중심주의가 판을 치다보니 인간 본연의 참뜻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도덕성이 무너지고 인성이 사라지는 세태를 보면서 나름 보탬이 되고 싶었다. 나도 부족한 면이 무척이나 많다. 나부터 개선하고 바꾸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청소년은 나라의 보배요 희망'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일부오염되고 혼탁한 정신은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 교육의 중심에 내가 자리하고 싶은 것이다. 이건 진심이다.

 

Q강사료는 어느정도 되나.

-강사료 등 수입을 위해 효 인성 교육을 시작했다면 나는 아예 처음부터 포기했을 것이다. 나의 삼모작으로 설정도 안했을거다. 나는 국가유공자로 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생활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긍지와 철학이라는 목표아래 시작했다. 한달 내내 강의를 해도 110만원이 넘지 않는다. 사명감 하나로 시작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효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은거다.


Q자서전을 쓰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제목을 색다르게 붙였다. '꼴값을 떨어 봐'라는 자서전인데 지금 한창 쓰고 있는 중이다. 조만간에 출간될거로 예상하고 있다. 꼴값은 나이값이고 자리값이라는 얘기다. 내가어떤 값을 하느냐에 따라 존경을 받을 수도 아니면 무시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두번에 걸쳐 신장 이식수술을받은 사람이다. 한번은 남동생한테 받았다. 지금으로 부터18년 전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 지난 2016년 4월에 외동딸로 부터 신장이식 수술을 다시 받았다. 지금은 부작용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당시 사위나 아들들이 모두 신장을내어주겠다고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성스러운 건지를 깨달았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이런 감사가 '효의 상징' 아니겠는가.


Q가슴벅찬 얘기같다.


-나는 한때 중앙동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한 적도 있다. 선부동 종합상가에서 해장국집도 해봤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쓴맛을 본거다. 인생의 쓴 맛을 봐야 철이 든다고 한다. 그래야 내일의 희망을 노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려울때마다긍정적인 마인드를 버린 적이 없다. 부정은 부정을 낳는다는 철학은 분명하다. 좋은 마음을 간직하고 남을 배려하면 언젠가는 나에게 복이 오지 않겠는가. 언제 어디서나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Q표창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있는데.


-부끄럽지만 여러개의 표창을 받았다. 국방부장관과 국가보훈처장, 육군참모총장, 경기도지사, 경기도 교육감, 특전사령관, 경호경비사령관, 공수여단장, 민주평통 경기도 의장상등 다수의 표창을 받았다. 모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기억나는 경력이라면 안산시 체육회 부회장과 안산예총사무국장, 안산학 연구원 이사, 법무부 안산보호 관찰소 특별 범죄 예방위원 등을 역임했다.


Q마지막으로 효 인성에 대해 정리해 달라.


-내가 언제나 효 인성 강단에서 강조하는 말이 있다. '모든 근본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효 인성의 8대덕목을 정리하고 싶다. 정직과 책임, 존중, 배려, 효, 협동, 소통, 예 등이다. 어르신이 없는 사회는 없다. 어르신이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또 하나의 희망이다. 지금은어렵지만 좀더 활력넘치는 사회, 그런 사회 분위기가 정착되길 바랄뿐이다. 인생 삼모작을 위한 나의 소망이다.


인터뷰=최제영 大記者 cjy1010@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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