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늘 정치의 한복판에 있으면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학문적으로 정치란 권력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공유할지를 결정하는 기술이다.

즉 정치란 한 사회의 자원과 가치 배분에 대한 최종 의사 결정을 뜻한다. 인간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한, 그 사회 속에 내재한 다양한 가치와 이익을 조정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정치다.

그러므로 정치, 정치인은 필연적으로 권력을 운용하게 되는데 여기서 드는 또 한 가지의 의문, ‘권력은 과연 정치인들의 전유물인가?’ 권력은 위험한 것이어서 일반 국민들이 접근하기는 어렵고 이른바 ‘자격’을 획득한 정치 엘리트이거나 행정관료 만이 다룰 수 있는 특별한 영역인가? 정치, 정치인은 과연 일반 국민들과는 다른 존재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권력은 어디에나 있다. 권력은 그 흔한 공기처럼 일상으로 우리와 함께한다. 국가기관이나 군대와 같은 법적 조직, 회사와 같은 이익 집단은 물론이고 가족 구성원 간에도 친구 사이에도 엄연히 권력은 존재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싶고 또 그 권력을 써 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권력을 두려워하고 권력은 나 아닌 다른 이들의 몫이라고 기피하는데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1조 2항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권력은 결코 정치인이나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권력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주체적 시민 역량과 틀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인간은 혼자서는 할 일이 극히 제한적인 나약한 동물이다. 토끼 한 마리도 혼자서는 제대로 사냥할 수 없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해야 하고 서로 협력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래야 여럿이 오래 먹을 수 있는 큰 동물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사냥을 할 때에도 정치가 필요한 것이지만 진정한 정치는 사냥으로 생긴 획득물을 나눌 때 필요하다. 만약 획득물을 나누어 줄 권력을 가진 사람(정치가)이 자기와 자기 주변에게 일방적으로 많이 나누어 주고 다른 참여자들에게는 죽지 않을 만큼만 준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권력행사(정치행위)가 아니다. 이 사냥에서 희생된 사람의 유가족, 다친 부상자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에게 우선 배분하고 나머지를 골고루 나누어 갖는 다면 아마도 이러한 권력행사는 박수 받아 마땅할 것이다.

이런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정치가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정의를 내린 이론가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다. 베버는 정치가란 ‘악마적 수단’을 통해 ‘천사적 목적’을 실현하는 존재라고 규정한 바 있다. 때로는 원칙으로, 때로는 타협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게 바로 정치가의 역할이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정치가가 갖춰야 할 미덕은, 베버를 다시 인용하면,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이다. 열정과 책임감의 다른 이름은 의지다. 의지가 목표로 삼는 것은 더 나은 국가와 사회로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 열정, 책임감, 균형 감각을 갖춘 정치가의 존재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을 이끌어 나갈 정치가를 기다리는 이가 결코 나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 되어 권력을 배분하고 사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이해와 배려, 양보와 타협, 신뢰와 용서, 더불어 사는 삶의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것이 좋은 정치이다. 시민과 권력을 나누고, 시민 앞에 정직한 정치, 감동과 활기가 가득한 예술 같은 정치를 이곳 안산에서 한번 만들어보자! 욕심일까!

윤기종 (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한국YMCA전국연맹 평화통일운동협의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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