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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벌새와 가시목걸이를 한 자화상’
반월신문 | 승인 2019.02.27 10:56

김용남의 미술세상

 

프리다 칼로 ‘벌새와 가시목걸이를 한 자화상’

 

1907년 맥시코에서 출생하고 1954년 47세 나이로 생을 마감한 프리다 칼로는 초현실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의 우상이었다.

프리다는 6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발이 휘어 다리를 절었다. 친구들은 그녀를 ‘목발의 프리다’라고 놀렸고, 이는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사춘기 시절에는 오른발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다리 길이가 다른 것을 감추기 위해 늘 긴 멕시코 전통 치마를 입고 다녔다고 한다.

의학도였던 프리다 칼로의 나이 18살 때 그녀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면서 전차의 금속 기둥이 그녀의 몸을 관통했고, 버스가 폭발하면서 그녀의 몸에 무수히 많은 파편이 박혔다. 프리다는 사고에서 회복되는 기간은 2년이 넘게 걸렸으며, 이 사고로 평생 고통받았다.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 있어야 하는 지루함과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해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고는 그녀의 육신만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의 꿈도 빼앗아 갔다.

그럼에도 프리다는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의 캐노피 윗부분에 거울을 달고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1928년, 칼로는 멕시코 공산당에 가입했고, 평생의 사랑이자 고통, 연인이자 적인 21살의 연상인 맥시코의 민중화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났다. 두 번의 이혼 전력과 심각한 여성 편력을 지니고 있던 디에고는 결혼 후에도 수없이 외도를 했으며, 그중에는 프리다의 여동생 크리스티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리다의 결혼 생활은 고통과 고독, 상실감으로 얼룩졌다.

훗날 프리다는 디에고와의 결혼 생활을 첫 번째 교통사고에 이은 ‘두 번째 대형사고’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평생 디에고를 놓지 못했다.

아이를 세번이나 유산했던 프리다는 뱃속에 태아를 그려낸 작품들이 많았고 사람의 인체를 도려내고 해부학의 그림처럼 내장들을 표현하기도 한 적나라한 그림들이 많기 때문에 그녀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으로서 자신의 솔직함을 당당한 대면의 정면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그중 ‘벌새와 가시목걸이를 한 자화상’을 그렸다.

머리에는 나비와 잠자리들이 앉아있고 검은 고양이와 죽은벌새,죽은 원숭이가 칼로에게 매달려있다.

16x24의 작은 크기의 자화상이지만 너무도 중요한 상징적 압축이 들어 있어서 큰 관심을 끄는 작품이다.

실패한 결혼생활의 낙담과 지속적인 고통과 불운을 경험한 칼로는 맥시코 전통 의상을 입고

그리스도의 순교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표현했다.

가시면류관을 목에 두르고, 가시에 찔려 피도 흐른다. 참을성 있게 고통을 감내하며 무려 35번의 재수술을 거듭하였다. 고통이 너무 심해 알코올과 마약에 의지해 살아온

삶이 이가시 목걸이와 같은 육체의 통증을 견뎌야 했던 칼로의 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또한 자유룰 상징하는 죽어있는 벌새의 모습이 또다른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더욱더 안타까운 마음을 같게하는 작품이다.

 

김용남 안산환경미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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