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캐다

심명옥

 

어디 가서 냉이를 캐겠냐고 말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언니와 나는 텃밭으로 향한다. 냉이는 땅이 완전히 녹기 전에 캐야 향과 맛이 일품이다. 봄기운이 완연해져 꽃이 피기 시작하면 냉이 뿌리의 알싸하고 달큰한 맛이 사라진다. 겨우내 달고 있던 누런 잎 사이로 자줏빛 새잎을 달고 있을 때 캐서 먹어야 제 맛이다.

냉이를 캔다고 나섰지만, 딱히 기대하지 않는다. 이제 막 입춘이 지났기에 빈손으로 와도 그만이다. 냉이 캘 호미와 그릇을 찾으며 설렘을 즐긴 것으로 충분하다. 고향에만 오면 어린 시절에 했던 일들을 한 번 해보고 싶어 하는데, 그 때마다 언니는 별말 없이 동행해 준다. 서로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어린 시절로 빠져드는 순간일 게다.

콧노래를 부르며 텃밭으로 간다. 엄밀히 말하면 텃밭이라기보다는 집터다. 내가 태어나서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집이 있던 자리다. 부모님은 새 집을 지으면서 집터를 무너뜨려 밭을 일구었다. 그 이후 30년 이상을 그 자리에 고추며 참깨 등 밭작물을 심으셨으니, 밭이라 불러도 괜찮은데, 영 어색하다. 홍길동이 호형호제 못하는 답답함과 견주어도 되려나.

텃밭에 도착하니 냉이보다 추억이 먼저 보인다. 봄은 보는 계절이라던데, 텃밭에선 추억을 덤으로 보여 준다. 넓은 밭에 흔적도 없는 집을 뚝딱 세운다. 집에 살던 사람들을 부른다. 세상에 없는 아버지는 쇠죽을 끓이고, 걷는 것도 힘든 엄마는 장사 나갈 두부를 만든다. 비질 소리에 깨어난 어느 아침 마당엔 지게가 싱싱한 초록으로 서 있다. 추억만 캐도 마냥 좋겠지만 냉이를 캐기 위해 생각을 툭툭 털어낸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냉이를 찾는다. 해를 좀 더 보면 초록 잎으로 변할 냉이는 아직 땅 색깔과 비슷하지만, 작년에 있던 자리를 알기에 찾기는 쉽다. 제때에 왔는지, 냉이는 아직 보호색을 입고 있다. 호미로 캐내니, 하얀 뿌리가 실하다. 언 땅 속에서도 냉이뿌리는 어는 법이 없다. 꿋꿋이 버티고 있다가 봄보다 먼저 잎을 내기에 서둘러 캐야 한다. 뿌리가 갖고 있던 양분을 잎과 꽃으로 다 내보기 전에. 벌써 꽃대를 만드는 냉이도 있다.

호미질이 바빠진다. 응달쪽은 얼어 있어도 양달쪽은 녹아 냉이 캐기가 쉽다. 쑥쑥 뽑혀 나오는 냉이가 쌓여간다. 된장찌개에 넣을 정도만 캐면 좋겠다는 바람을 뛰어넘어 국을 끓여도 충분할 양이다. 신이 나 “냉이다.” 소리가 커진다. 언니는 그런 내가 신기한지 냉이를 다 가지란다. 손이 빠른 언니는 나보다 훨씬 많이 캤으면서도 냉이를 다 양보한다. 많다고는 하지만 둘이 나누기에는 부족해 보였던 모양이다.

형제자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못 간 언니는 양보를 참 많이 했다. 오빠를 위해 대학을 울면서 포기했고, 일하기 귀찮아하는 내 대신 엄마를 도맡아 도왔다. 언니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밥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가 하면 부지런히 계절을 밥상으로 날랐다. 봄이면 냉이를 잔뜩 캐와 다듬었고, 동네 아줌마를 따라 산나물도 많이 뜯어왔다. 뿐만 아니라, 언니는 수놓기나 뜨개질 등 손으로 하는 내 숙제도 많이 해 주었다. 숙제 마감일 전에 울면 언니는 밤을 새 내 뜨개 숙제를 해 주었다. 아슴아슴 잠을 쫓으며 언니를 지켜보던 밤이 선명하다.

이번에 캔 냉이만큼은 내가 양보하고 싶다. 언니는 한사코 거절한다. 다듬기 귀찮아서라는 핑계를 대지만 뭐든 뚝딱하는 언니가 나 편하라고 하는 소리인 건 뻔하다. 몇 번이나 언니에게 냉이를 주려다 결국 실패한다. 마지못해 받아들며 고마움을 전한다. 냉이와 함께 살강살강 캐낸 추억 속의 고마움까지 전한다. 피식 웃는 언니 얼굴이 봄이다. 올핸 냉잇국 향이 유난히 짙겠다.

 

심명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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