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이라고 했으니 일단은 순조로운 출발이다. 새해부터는 매일 짤막하게나마 하루를 담아놓겠다고 한 스스로와의 약속을 일주일째 지키고 있다. 본 영화, 읽은 책, 만난 사람, 그리고 사소한 기분까지 일상적인 리듬을 적어나가고 있다.

새삼 마음을 다잡은 건 지난 연말에 받은 다이어리가 유난히 예뻐서만은 아니다. 조일희 수필가의 ‘수첩’이란 글 덕분이다. 문구점에 가서 수첩을 고르는 설렘이나, 주소록을 옮겨 적는 신중함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글쓴이의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공감은 게으름으로 접어 두었던 습관을 깨워내기에 충분했다. 다이어리 쓰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어느 새 놓치고 살았는지. ‘다시 제대로 써 봐야지.’

내가 다이어리를 좋아하게 된 건 중학교 때부터다. 지긋지긋한 일기 검사에서 해방되자 아이러니하게도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용돈 모아 산 첫 일기장을 잊지 못한다. 초록색 비닐 표지에 노란 금박으로 박혀 있던 ‘Diary’란 글씨. 뭔가에 이끌리듯 그때부터 다이어리는 나의 속말들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친구가 선물해 주었던 ‘無’나 ‘空’이 박힌 백지 일기장도 빽빽이 채워냈다. 어찌나 끼고 살았던지, 좋아하는 친구로 속앓이하던 시간, 무작정 가출하고 싶어 하던 순간들이 지금이라도 낡은 일기장에서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다이어리는 내게는 그냥 일기장 그 자체였다. 중학교 영어 시간에 배운 단어 뜻대로, 청춘의 시절을 거쳐 결혼할 때까지 일기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남편이 처음 내민 다이어리를 대했을 때의 당혹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스케줄을 정리해 놓을 용도로밖에 안 보이는 노트 앞장에도 ‘Diary’란 단어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니. 서둘러 사전을 찾아보았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날짜별로 간단한 메모를 할 수 있도록 종이를 묶어 놓은 것. 흔히 사무용’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뜻 1, 2로 구별되어 있지만 사적인 영역이라 생각한 일기에 사무용이란 낱말이 끼어들었을 때의 이물감을 털어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간극을 좁히니 다이어리는 여전히 좋았다. 일기를 쓰기 버거운 날에는 한 일들만 대충 적어 놓아도 되고, 주소와 연락처, 업무, 약속까지 적어두니 편리했다. 그 때부터 수첩과 일기장을 겸한 다이어리를 더 자주 집어들게 되었다. 처음에 시큰둥하게 받던 다이어리를 잘 쓰니 지금껏 남편은 해마다 다이어리를 선물 받으면 내게 제일 먼저 선택권을 준다. 대여섯 권 되던 다이어리가 두세 권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다이어리를 고르는 즐거움은 크다.

책꽂이에 연도별로 쭉 꽂혀 있는 다이어리는 결혼생활의 기록이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적어 내려간 원망이나, 일을 포기하고 꼬박 3년간 육아를 하며 ‘나’를 잃어버릴까 고민한 흔적이 있을 게다. 그런가 하면 지켜보고 느낀 모든 것을 기록하느라 한 해에 두 권까지 필요했던 육아일기나, 항암제 때문에 손끝으로 찾아온 고통을 참아내며 써내려간 병상일기도 있을 테다. 한 권을 빼들을 때마다 나이테를 들여다보며 나무의 이력을 읽어내는 것처럼 한 해의 독특한 무늬를 기억에서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해거리 없이 꾸준히 써온 다이어리. 40여년을 한결같이 써오다 최근 몇 년 간은 다이어리를 홀대했다. 핸드폰이 역할을 대신해 주는 바람에, 다이어리를 대하는 설렘도 정성도 한풀 꺾였다. 습관이 되어 으레 가방 속에 넣고 다니지만 꺼낼 일이 별로 없다. 배우 없는 연극무대에 다이어리 홀로 서 있는 셈이다. 다이어리를 적으며 뒤돌아보는 시간을 생략하니 덩달아 생활 리듬이 빨라졌다. 모든 일들이 앞을 향해서만 간다.

느린 호흡이 필요하다. 다이어리를 쓰며 핸드폰에 익숙해진 내 생활을 살짝 비틀어보고도 싶다. 풍경을 사진 찍듯 일상을 글로 찍다 보면 다이어리의 여백이 자연스레 줄어들겠지. 훗날 읽어낼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질 건 당연할 테고. 올 한해, 어떤 무늬를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주황색 다이어리 표지가 유난히 반짝인다.

심명옥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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