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보곤 덥석 집어 드는 책이 있다. 정재승도 그 중 한 명. 오래 전 과학이라면 질색하는 나를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에 초대해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뇌를 연구했다며 인간이라는 숲을 함께 탐험해 보자고 손을 내민다.

그가 펴낸 《열두 발자국》(정재승 글, 어크로스)은 강연집. 과학은 어렵지만 수식의 숲을 지나고 어려운 개념의 바다를 넘으면 우주와 자연, 생명과 의식의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다는 글쓴이의 뜻이 가득 담겼다. 그러니 ‘뇌과학’이라는 말에 지레 겁내지 말자.

책을 읽으며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될 만한 지혜를 건지다보니 물리학자인 그가 우주의 탄생과 팽창 등을 찾는 질문에서 우리의 뇌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묻는 질문으로 넘어간 게 더없이 반갑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릴 때 왜 미적거릴까. 너무나 많은 정보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늘어나면 처음에는 좋은 감정이 커지지만 어느 숫자를 넘어가면 오히려 만족도가 크게 떨어진단다. 가장 무난한 선택지는 3~6가지라니 기억해 둬야겠다.

또 다른 이유는 정답이 있는 문제만 오랫동안 풀어온 탓이다. 획일화된 교육 속에서 정답을 골라야 한다는 압박을 받다보니 정답이 없는 문제는 마냥 고통스러울 밖에. 게다가 실패를 감싸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더해져 결정장애를 겪는 사람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 이런 장애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일단 이성적 판단이라는 말과는 달리 감정이 빠른 판단과 신속한 결정에 도움을 주므로 우리의 감정에 집중하자. 더불어 인정욕구에 얽매여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도 삼가야 하고,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하는 방법도 좋다. 마지막 방법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면 두려울 게 뭐 있으리.

그런데 계절 탓인가.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앞에 두니 마지막 방법에 자꾸 마음이 간다. 비록 크기는 다르나 누구나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고 바꾸고 싶겠지. 그럼에도 우리는 매번 계획을 세우고도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한다.

글쓴이는 이런 ‘새로 고침’이 어려운 이유를 습관에서 찾는다. 습관을 바꿔야 변화가 일어나는데 예측 가능하고 안전한 기존 방식을 버리지 못하니 늘 계획만 하다가 끝을 내는 거다. 게다가 매년 새해가 반복되니 절박함도 없다.

그렇다고 오는 새해를 막을 수도 없는 일, 인생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그의 충고를 마음에 새긴다. 그가 익숙한 물리학에서 뇌과학으로 건너간 것도 습관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도전이었겠지. 그런 그를 보면서 내 머릿속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쓰임새를 찾는 새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손에 든다.

황영주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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