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누군가 몸이 아프거나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부쩍 듣는다. 실제로 일교차가 1℃ 벌어질 때마다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2%씩 증가한다고 한다. 암튼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떠올리는 책이 있다. 지금은 절판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오츠카 아츠코 사진과 글, 송영빈 옮김, 글로세움). 출판사의 사정으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저자는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에 걸린 엘마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어떻게 발을 들여놓는가를 사진으로 담았다. 고칠 수 없는 병, 할머니는 “때가 되면 조용히 눈을 감고 싶다.”며 의료기구를 잔뜩 달아서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에 반대한다.

그리고는 일상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가족의 역사와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외출할 때마다 정성스럽게 화장을 했으며, 정원의 화초를 가꾸었다. 가족과도 편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죽음이란 말이지, 영혼이 육체를 떠나 여기와는 다른 세상으로 갈 뿐이야.”

우리는 63페이지, 45장의 사진을 통해 할머니와 같은 공간에 산다. 이별이 슬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 곁에서 꺽꺽 울기도 하고, 고양이 스타키티를 함께 어루만진다. 책 안에서 죽음은 그저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순간일 뿐이다.

아직 존엄사에 대한 개념이 익숙치 않은 10여 년 전,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온화하게 삶을 마감하는 엘마 할머니의 모습은 아름다운 충격이었다. 나와 동생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는 일과 입관 절차에서 배제된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른들의 배려였지만 그 짧고 굵은 공백은 오랜 시간 우리에게 상처로 남았다.

‘한 사람이 태어나 자신의 일생을 정성껏 살아내고, 떠날 날에 맞춰 주변을 정리하고, 작별 인사까지 하고 떠나는 모습은 훌륭하게 완성된 예술작품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고 감동적이다.’라는 옮긴이의 생각을 통째로 잃어버린 채 살아야 했으므로.

내가 시를 쓰면서 유난히 아버지의 기억을 많이 담은 건 그 헛헛함을 채우고 작별 인사를 나누는 과정이었다. 글이란 자신을 들여다보고 세상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는데 나는 아버지와 나누지 못한 말들을 시 속에서 주고받았던 거다.

언제쯤 죽음이 편안해질까. 고요한 소멸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더없이 따뜻한 주황색 표지를 쓰다듬는다. 엘마 할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은 밤이다.

꽃잎 지는 걸 한두 해 보나 / 시들해진 마음 / 덩이째 떨어진 / 동백꽃이 흔든다 / 참 좋은 시절이 오기 전 / 서둘러 생을 접으며 / 다 가져갈 테니 / 너는 / 잘 살아라 / 꼭 그래라 / 겨울을 안고 잠든 / 아버지 / 후드득 떨군 / 붉은 빛 / 까맣게 꺼진 / 아버지 눈 같아서 / 저리게 아파서 / 동백꽃 지면 / 찬란한 봄이 오리니 (동백꽃 지면, 황영주)

황영주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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