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천문학, 지질학 등 ‘학(學)’이 붙으면 무조건 손사래를 쳤다. 사회학이라고 다를까. 인간 사회와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개념 정리만 듣고도 머리가 쑤신다. 만약 지인이 추천하지 않았다면 지레 겁을 먹고 들지 않았을 책이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기시 마사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 이마)이다.

흔히 사회학은 통계자료를 통해 그 사회를 들여다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저자는 그 틀을 과감히 깨뜨린다. 대신 한 사람씩 찾아가 어떤 역사적 사건을 체험한 당사자 개인의 생활사를 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주욱 늘어놓고, 그것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품게 만든다.

더구나 문장이 섬세하고 깊어서 마치 수필집을 읽는 듯하다. 「이야기의 바깥에서」, 「야간 버스의 전화」, 「실유카 나무에 흐르는 시간」이라는 차례만 봐도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거다. 명쾌하게 똑 떨어지는 해답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겠지만 대신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

특히 저자는 분석할 수 없는 것, 그냥 그곳에 있는 것, 색이 바라서 잊혀 사라지는 것들을 담았으니 눈여겨보란다. 왜냐하면 이 세계 도처에서 굴러다니는 무의미한 단편, 그 단편이 모여 이 세계가 이루어져 있고, 나아가 그러한 세계에서 우리는 다른 누군가와 이어져 있으니까.

여기 여행을 떠나는 부부가 있다. 아내는 빈집 대책을 고민하다 그들의 평소 생활을 녹음해 두었다가 여행을 떠날 때 한없이 무한 반복해 놓는다. 그런데 둘은 사고로 죽고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는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남겨져 있다는 걸 안다. 이렇듯 존재하는 것은 영원히 사라져 버리지만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남겨진다. 전혀 의미가 없는 평범한 존재가 어느 비극이나 상실을 계기로 중요한 의미를 띠는 것이 이 사회다.

그 뿐일까. 죽음을 계기로 유명해진 화가 헨리 다거를 봐도 우리 주변에 발견되지 못하고 묻힌 수많은 헨리 다거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장소에 있음에도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던 존재에게 손을 내미는 사회가 바로 저자가 그리는 사회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사회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이 책은 너무 사소해서 소홀히 넘길만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과연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회를 엿볼 수 있는 거냐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물 흐르듯 흘러가는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무릎을 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은 드러나지 않은 이름들이 더 많은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 또한 작은 부스러기지만 이 자리를 빛내고 있음이 분명하고. 오롯이 혼자 빛나는 별은 자꾸 보면 지루하더라. 내 곁의 수많은, 빛나는 부스러기를 헤아리며 책을 덮는다.

황영주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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