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난 기분이 별로다.” 엄마의 대답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아쉬움을 눈치 채지 못하고, 아버지 만나니 좋으시냐고 여쭙다니. 철없는 질문을 했다는 생각에 두부전골을 뜨는 손길이 더디다.

뒤늦게, 엄마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살핀다. 엄마는 조심조심 밥숟가락을 뜨실 뿐 영 말씀이 없다. 영면한 아버지 모신 자리 앞에서 당신 생일 케이크를 자르고 왔으니, 엄마는 꽤나 허허로웠을 것이다. 그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각자 지고 갈 감정이 따로 있다지만 엄마의 마음에 비하면 아버지에 대한 내 그리움은 얄팍하기 그지없었던 걸까.

그리움을 홀로 삼키고 있었을 엄마 생각에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무겁다. 갑자기 몇 년 전 접어 두었던 영화 ‘님아, 저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고 싶다. 한복을 입고 다니시는 걸 빼면 우리 부모님 모습과 별다를 게 없어 무심히 넘겼던 영화였는데, 새삼 궁금해졌다. 왠지 영화를 보고 나면 부모님의 흙 닮은 사랑을 만날 것만 같다.

화살은 과녁 정중앙에 꽂힌다. 영화 속 두 분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는 엄마와 아버지. 부모님은 어쩌면 영화 속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빼박은 삶을 사셨을까. 영화를 보며 엄마와 아버지 모습이 휙휙 스쳐 지나가는데, 예사로 보아 넘겼던 몸짓마다 사랑이 배어 있다.

“나이 먹어도 마음은 한가지”라며 배시시 웃던 영화 속 할머니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모님의 애정 고백은 끝까지 시들지 않았다. 수시로 이쁘냐고, 좋으냐고 소녀처럼 묻는 엄마나 그런 엄마를 쑥스러운 듯 밀어내시면서도 웃음을 삼키던 아버지는 영락없는 사랑꾼이었다. 엄마에게 마지막 말씀으로 “고맙다, 당신 참 예쁘다.”를 주셨던 아버지. 인생 말년에 두 분이서 알콩달콩 애정 표현하며 사시던 모습은 사랑의 고전(古典)이 되고도 남는다.

오랜 세월 두 분이 함께해온 일상은 사소한 배려 속에서 더욱 빛이 났다. 엄마는 먹는 것이나 입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 살피기에도 그 기준을 아버지에게 두었다. 달래무침을 할아버지 숟가락 위에 얹어 주던 영화 속 할머니 모습은 그대로 엄마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자처럼 아버지 옆에서 살뜰히 살폈던 엄마의 모습에서 사랑을 읽는다.

팝콘처럼 톡톡 튀던 두 분의 장난기는 일상을 건너는 단비였을 게다. 무덤 앞에서 오빠가 엄마 얼굴에 케이크를 묻혔던 장난은 원래는 아버지 몫이었다. 엉덩이를 엄마 코앞에 대시고 방귀를 뀌거나 손으로 엄마 머리 헝클이거나 엄마를 콩단이라고 놀리는 건 아버지가 엄마 놀리던 단골 메뉴였다. 짓궂은 아버지 장난에 볼멘소리를 하지만 끝내는 웃음을 터트렸던 엄마. 장난이 피어나는 순간, 사랑의 기억은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사소하지만 꾸준히 쌓인 기억은 엄마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엄마의 얼굴은 환한 박꽃이 된다. “아버지가 화장실에 각 잡아 잘 걸어 놓은 수건을 절대로 빨지 마라. 아버지의 손길이 묻은 수건이니, 엄마 죽을 때까지 그대로 두어라.” 아버지를 잊고 싶지 않는 엄마의 절절한 사랑 고백이다. 할아버지를 땅에 묻고 ‘이제 당신을 누가 기억’하겠냐고 읊조리며 구슬프게 울던 할머니 모습 위로 엄마의 모습이 겹친다.

엄마는 지금 사랑을 다시 쓰고 있다. 매일 아버지 사진 앞에 커피를 타 놓고 살아생전처럼 대답 없는 대화를 이어나간다. 나는 살아 있는 교과서로 사랑을 배우는 중이다. 계속 집필중인 엄마의 사랑 교과서에 충실한 조연이 되리라 다짐하며 미안함을 툭툭 털어낸다. 가을 하늘이 한없이 맑다.

심명옥 안산문인협회 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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