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깜짝 이벤트라고 할 정도로 갑작스레 26년 전의 추억이 장롱 속에서 소환된다. 장갑을 찾아달라는 작은아이의 성화로 부지런히 놀리던 손길에 툭 걸려든 자줏빛 흔적, 꽤나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한때는 따뜻하게 내 마음을 덥히곤 하던 카디건이 깜깜한 곳에서 도대체 얼마만큼의 세월을 인내하고 있었던 걸까. 오랜 세월은 퀴퀴한 냄새까지 업고 왔다.

1991년 가을, 친구들과 설악산으로 향하는 내게 그는 카디건을 내밀었다. 설악산은 춥다고 손에 쥐어주며 주말 데이트 못하는 서운함을 눌러 담는 것 같았다. 흔쾌히 받아들고 떠났던 길, 그의 예상대로 10월 중순임에도 설악산은 얇은 점퍼나 셔츠로 견뎌내기엔 어림없었다. 칼바람은 성긴 옷 사이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한기가 스며들 때마다 손에 들고 있던 카디건을 걸치면 따뜻해지곤 했다.

따스했던 느낌이 좋아 설악산을 다녀온 뒤에도 나는 카디건을 그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걸치고 있으면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그의 온기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출판사에서 국어 문제를 출제할 때 어깨를 감싸주었던 카디건은 은은한 형광등 불빛만큼이나 포근했다. 우리 둘 사이에 이별이 없었기에 카디건은 완전히 내 것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도 카디건은 쉽게 정리할 수 없었다. 무겁고 보온력이 떨어진 카디건 대신 가볍고 따뜻한 옷을 사 입어도 카디건은 증명서처럼 서랍 안쪽에 놓아두었다. 이사할 때마다 보물 다루듯 장롱 서랍 한쪽에 얌전히 개켜 두었다. 추억이 잔뜩 밴 카디건은 이삿짐을 싸고 풀 때마다 그 옛날을 불러들였다 잠재웠다. 이삿짐 정리하느라 피곤한 시간에 잠시 쉼표 같은 웃음을 던져 주며 말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8년째, 단 한 번도 햇빛을 본 적 없이 카디건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 시간만큼 어쩌면 그에게 가는 내 감정도 그리 고이 접어 두었던 건 아닐까. 사랑이란 감정에 맹렬히 달려들던 시절이 분명 있었을 텐데 그 기억마저 희미하다. 바람과 햇살 속에서 순간순간 출렁이던 행복감은 어느 사이 무감각한 시선 뒤에 숨어 버렸다.

한때는 지독한 사랑이었다. 내 생활의 중심에는 늘 그가 있었고, 그의 창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이기도 했다. 가정을 가꾸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감정이 희석되긴 했지만 내가 꿈꾸는 노년에도 그는 늘 내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 시골 한적한 길을 걷고 있는 모습에도, 책을 읽다 깜박 잠들었다 깨어난 부스스한 모습에도 그는 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를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 덜컥 만진 카디건이 낯선 만큼 멀리 와 버린 내 모습이 생경하다.

카디건을 만지작거리며 자꾸 되뇌어 본다. 중년의 나이가 주는 관용으로 편안하다고 착각한 것은 서걱이는 관계에 지레 눈감아버린 건 아닌가. 이중주처럼 각자의 생활을 연주하다 좋은 화음으로 만나면 된다 생각했지만, 정작 나는 내 안에 빠져 그를 문 밖에 세워 둔 건 아닌지 반성중이다. 새삼 사랑에 들뜰 나이는 아니지만, 홀로의 시간을 즐기려 술 좋아하는 그에게 더없이 관대했었을 게다. 평행선을 달리며 편안해하는 모습에 문제를 느끼지 못한 시간들이 퍼뜩 일어선다.

홀연히 사라진 그를 다시 찾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 박제해 놓은 추억을 꺼내 먼지도 털고 숨을 불어넣다 보면 길이 찾아질까. 이젠 그에게 가는 순전한 물길 정도는 늘 내어놓고 나를 다듬을 일이다. 까맣게 잊고 있던 날들을 상기시키려고 날아든 자줏빛 전언에 오래도록 귀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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