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한참을 망설이다 구입한 만화책 시리즈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만화방에 죽치고 앉아 세상의 시간과 시름을 잊었던 《캔디 캔디》(이가라시 유미코 지음, 미즈키 쿄코 원작, 티핑포인트). 아직도 팔리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이 나이에 새삼 무슨 만화책을 거금을 들여 사나 싶은 망설임에 마음을 접었다 폈다 하다가 결국 일을 저질렀다.

며칠 뒤 손에 잡힌 책은 크기는 작아졌으나 그 옛날 읽은 내용 그대로였다. 틈틈이 짬을 내서 열 번은 반복해 읽었나 보다. 심심할 때, 화가 난 마음을 풀 일이 있을 때, 어려운 책을 읽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때, 잊고 살았던 나의 이상형이 생각날 때 무시로 들었더니 딸이 지나가며 묻더라. “그렇게 재미있어?”

‘암, 재미있지. 그런데 그냥 만화가 아니네. 인생이 다 담겼네.’ 물론 신데렐라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하면 그 말도 맞다. 고아로 태어난 캔디가 어느 날 갑자기 대단한 집안의 양녀로 입양되었으니까.

그런데 전체적인 내용에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이 흐르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행복이나 행운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주인공의 삶도 멋지다.

게다가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내가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이겨나갈 수 있었던 힘은 이 만화에 있었다. 주근깨투성이라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밝게 웃었던 아이, 무한 긍정에너지로 자신의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 아이를 보면서 닮고 싶다는 마음을 내 안에 심었던 거다.

그래서 “우리 엄마, 아빠는 만화책 보는 걸 싫어해요.”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면 안타깝다. 그 부모에게 쪼르르 달려가 묻고 싶다. 어린 시절에 《꺼벙이》, 《맹꽁이 서당》 등을 보면서 낄낄거리지 않았냐고. 황미나 작가가 펴낸 만화 시리즈에 열광하고 《아기 공룡 둘리》가 실린 보물섬을 서로 보려고 하지 않았냐고.

왜 만화를 볼까. 뭐니 뭐니 해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만화는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고 아무 생각 없이 웃게 만든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고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특효약이기도 하다.

우리가 봤던 명랑 만화나 순정 만화는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캔디 캔디》는 감동까지 얹은, 여느 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좋은 책이라고 애써 말하고 싶다. 이런 만화를 나이 들어서 보자니 부끄럽다고 하면 조금 비겁한 거 아닌가.

좋은 건 나눠야 한다고 몇몇 사람에게 빌려줬더니 다들 ‘캔디 앓이’가 되었다. 뭐든 끌리면 한 번 푹 빠져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일. 내 꿈은 늙어서도 안소니를 외치는 할머니다. 웹툰으로 유명한 작품이 영화로도 만들어지는데 이참에 ‘만화책 보는 어른 모임’이라도 만들어 볼까 궁리 중이다. 나이를 잊고 낄낄거릴 생각이 있으면 동참하시라.

황영주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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