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10월 10일자 <반월신문>에 1면 톱기사로 “한글날 특집 '별망성 예술제 이름 적절성 논란’”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필자가 ‘별망성 예술제’의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한 사람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고자 보충 설명을 한다.

기사에도 밝혔듯이 ‘별망성’은 일반명사이다. 그 지역의 고유명사는 ‘草芝鎭초지진’, ‘草芝梁營초지량영’이다. ‘별망성’은 ‘본 城성에서 떨어져 나와 별도로 망을 보는 城성’이라는 일반명사이다. 그래서 ‘작은 성’, ‘해안 초소’라는 의미다. ‘별망성 예술제’는 ‘작은 성 예술제’, ‘해안 초소 예술제’라는 뜻이다.

과연 안산시를 대표하는 예술제 이름으로 ‘작은 성 예술제’, ‘해안 초소 예술제’가 적절한가? 왜 안산은 이런 부적절한 이름으로 스스로 위상을 떨어뜨리는가? 안산시를 대표하는 예술제 이름으로 어떻게 이런 왜소하고 초라한 이름을 써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이름은 30년 전 안산시 초창기에 깊은 생각 없이 졸속으로 지은 것 같다. 진작 누군가 이의 제기를 해서 바로잡았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30년간 써왔으니 앞으로도 그대로 쓰자는 말은 “그냥 이대로 살다 죽자.”는 거나 같은 말이다.

10월 10일자 기사에도 밝혔지만 ‘별망성’의 가치는 안산시 스스로도 하찮게 본다. 전 8권으로 된 『안산시사』에서 ‘별망성’은 서술된 분량이 10줄도 채 안 된다. 반면에 필자가 제안한 豹巖표암 姜世晃강세황 선생은 같은 책에서 20쪽이 넘는 큰 분량을 차지한다. ‘별망성’에 비해 40배도 넘는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초등학생도 다 안다. 그런데 왜 중요한 걸 버리고 하찮은 걸 예술제 이름으로 쓰는가?

뿐만 아니라 ‘별망성’은 예술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도대체 해안 초소가 예술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城성은 안보 시설이지 예술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표암 강세황’ 선생은 18세가 조선을 대표하는 최고 문화•예술인이다. 왜 이런 분을 내팽개치고 예술과 무관한 해안 초소를 예술제 이름으로 삼는가?

표암 강세황 선생은 詩시, 書서, 畵화에 모두 능해서 ‘三絶삼절’ 곧 ‘세 가지 예술에 모두 뛰어난 분’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불렸다. 표암은 문학, 서예, 미술을 모두 아우른 18세기 조선 최고의 문화•예술인이었다. 중국 乾隆帝건륭제 즉위 50년을 축하하는 잔치에 조선 문인 사대부 대표로 가서 황제 앞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분이다. 그러니 안산의 예술제 이름으로 이보다 더 나은 이름은 없다.

전국의 예술제 이름은 대부분 그 지명 뒤에 ‘예술제’를 붙인다. ‘호남 예술제’, ‘대가야예술제’, ‘천안예술제’, ‘전주예술제’ 식이다. 별로 개성이 없다.

그래서 지역이 낳은 인물을 넣어 예술제 이름을 짓기도 한다. 경주의 ‘원효 예술제’, 전남 영암의 ‘도선국사 문화예술제’, 충북 영동의 ‘난계 국악축제’, 서울 강서구의 ‘겸재 문화예술제’, 경북 영양의 ‘지훈 예술제’, 경기도 의정부의 ‘천상병 예술제’ 등이다.

하지만 이런 이름들은 종합 예술제 이름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원효대사와 도선국사는 승려로서 예술과 별 관계없다. 또 난계 박연은 음악가, 겸재 정선은 화가, 조지훈과 천상병은 문학가이다. 각기 특정 예술의 한 분야만 대표하는 인물들이니 종합 예술제의 이름으로 쓰기에는 약간 문제가 있다.

하지만 표암 강세황 선생은 시서화 3절로서 종합 문화•예술인이다. 안산시를 대표하는 종합 예술제 이름으로 안성맞춤이다. 이런 좋은 이름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제라도 ‘안산 표암 강세황 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안산 문화•예술의 분위기를 一新일신하여 새 시대를 열어 가자. ‘천년 문화•역사 도시 안산’의 위상이 절로 높아질 것이다.

김창진 초당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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