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문학평론가)

요즘 사회지도자라는 사람들 미투와 같은 추잡한 사건들을 두고 당치않은 논리로 합리화시키려는 경향이 만연 실로 안타깝다. 여자와 관련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아베총리 등 많은 지도자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동원 됐던 위안부를 두고 일제가 강제동원한 사실이 없다. 위안부 그 여자들 돈 벌기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돈이 많이 남는 장사다. 그러면서 위안부를 매춘부로 취급하는 등 여성들에게 성적 모욕감을 갖게 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 말들을 한다.

위안부에 대한 일본인들의 모욕적인 언행에 대해 미국 등 세계여성 등 많은 지도자들이 분노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성폭행 성추행 등으로 여성의 인권을 짓밟고 있다. 2017년 초 한 여성이 성폭행 성추행 사건을 폭로 그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남자들의 잘 못된 행실에 대해 지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폭로된 사실과 같은 행위가 있어서도 안 되지만 있었다면 있었던 행위에 대해 반성해야한다. 반성하지 않고 거짓 언행으로 변명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성 문제와 관련 남자들의 잘 못된 사고를 버려야 한다. 위안부의 분노, 미투 성폭행 성추행 그런 말 나오지 않도록 처신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업인이면 기업인답게, 정치인이면 정치인답게, 행정부 또는 입법 사법부 관리자이면 관리자답게, 여타 사회지도자면 사회지도자답게, 자신의 위치에서 믿음과 신의를 생명처럼 여기고 성실하게 생활해야 한다. 성추행 성폭행 자기부인을 떠 올리고 자기 딸을 떠 올리면 그 짓 하지 못할 것이다.

삶! 바르게 성실하게 그리고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성실과 믿음은 참眞이 그 중심이 되고 바른 언행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각 분야 사회지도자들에게는 그것들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을, 성실과 믿음을 중시하지 않은 그런 사람, 그런 사회는 불행에 휘말리는 것 지극히 당연하다. 성실 믿음과 관련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다. 하루를 살더라도 남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대통령 또는 재벌총수가 국민들로부터 지탄받고 교도소 수감생활을 하는 것 보다 가난한 선비로 사는 것을 중시하는 그런 삶이어야 한다.

흔히 하는 말로 여자에겐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 하면 성과 관련 행동거지라고 한다. 그 토록 소중한 성을 두고 오직 바른 사회를 위해 자기 스스로 성추행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를 한다. 그런데 반성하고 속죄해야 할 당사자 남자들은 아니다. 라고 변명한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들 성폭행 성추행을 당했다면 여자가 행동거지 똑바로 하지 못하고 어떻게 했으면 그런 일이 생기느냐며 오히려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런 비난을 무릅쓰고 자기 스스로 성폭행 성추행 당했다고 그 사실을 폭로했다면 그 용기를 높이 평가하고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그런데 성폭행을 한 당사자들은 그런 사실이 없다. 거짓이다, 합의하에 했다.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성을 매수했다. 남자란 경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면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사람을 나쁜 쪽으로 몰아세운다. 그리고 했던 행위에 대해 당당함 더 나아가 철면피 같은 말과 행동을 한다.

성폭행 성추행을 한 자들, 마치 근래에 일본인 다수가 일제 때 자기 선인들이 저질렀던 행위 위안부를 두고 매춘은 돈이 많이 남는 장사였느니, 강제 동원한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라는 등 그들이 하는 언행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드러난 미투 사건과 같이 부적절한 성행위가 있었다면 그 점 지탄받아야 하는 건 물론 반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개중에는 억울한 사람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실을 은폐 거짓언행으로 정당화하려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은 공인자격이 없다. 너나없이 그런 일이 있다면 옳고 그름 자신이 판단하고 조용히 수양하며 사는 것이 밝은 사회를 위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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