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공간'벗에게 가는길'대표

19세기는 용기 있는 천재들의 시대였습니다. 현대사에 고딕체로 이름을 남긴 이들이 태어났고 전통의 질서를 해체하는 외롭고도 의미 있는 작업과 새로운 가능성이 실험되던 시기였지요. 이번 주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라는 폴 세잔(1839~1906)과 인간의 위엄을 지키고자 했던 프랑스 양심이자 국민작가 에밀 졸라(1840~1902)의 30년 우정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잔과 졸라는 1852년 엑상 프로방스 지역의 부르몽 중학교에서 만납니다. 몸이 약하고 지독한 근시였던 졸라는 친구들에게 놀림과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자신을 도와주는 세잔과 금세 친해집니다. 프로방스의 밝은 태양 아래 세잔은 그림을 그리고 졸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들은 서로를 영웅처럼 숭배합니다. 고집 세고 자의식이 강한 세잔은 그림 그리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 아버지와 불화했지요. 졸라는 세잔을 파리로 이끌어 그림공부를 하게 합니다. 청년이 된 둘은 한결같은 격려와 우정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또한 경쟁하고 자극합니다. 졸라는 1865년, 살롱 전에 <올랭피아>로 비난 받은 마네를 옹호하는 글을 써 문단의 이단아로 주목 받은 후 문단을 뒤 흔드는 작가로 우뚝 섭니다. 하지만 시대와 아버지와 심지어 자신과도 불화했던 세잔은 졸라가 쓴 소설에서 자신의 우정이 조롱당했다고 오해합니다. 둘은 결별하지요.

프로방스로 내려간 상처투성이의 세잔은 시선을 내면으로 돌립니다.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에 있다.” 그리고 자연의 형태가 숨기고 있는 내적 생명력을 묘사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사물의 가장 단순화된 형태는 구, 원뿔,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는 사물의 본질, 그는 어릴 때 졸라가 선물해 준 사과를 자연의 은유로 설정합니다. 사과는 세상을 절개한 단면도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 설계도입니다.

“나는 한 알의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다시점을 통해 원근법을 무시한 추상에 가까운 형태와 대담한 색채 구성, 자연을 그리는 건 대상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을 실험하는 것이라는 말로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주의에 영향을 미쳤으며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계기가 됩니다.

“난 언제나 패자의 편에 설 걸세.”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한 편이겠군.”

“완전히 멀어지기에는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알아.”

한 때는 모든 것, 공기의 유연함과 태양의 뜨거움, 바위의 난폭함을 그려내고 싶었던 세잔과 시대의 모순과 억압에 항거하며 양심의 존엄성을 대변했던 졸라의 대화입니다.

현대는 사랑의 압도적 무게에 눌려 우정은 숨쉬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아니, 어쩌면 견고한 모든 관계가 어려운 시대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 우리가 깊은 우정으로 성장하여 재능으로 후세에 안내자가 될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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