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미성년자인 두 딸을 성추행한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필자가 피해자 국선변호사로서 참여했던 사건 이야기다. 첫째 딸아이가 법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특별히 아버지의 선처를 탄원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피해자의 고모들은 지속적으로 첫째 딸에게 아버지를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해 줄 것을 종용한 사실이 있었다. 그리고 피해자 국선변호사 모르게, 고모들이 피해자인 첫째 딸로부터 처벌불원의 의사가 담긴 탄원서를 받아냈다. 필자는 몹시 화가 났었다. 필자가 강력하게 반대 의견서를 제출한다면, 이와 같은 탄원서는 오히려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당사자인 첫째 딸이 고민을 하는 것이다. 아동보호기관에서 생활하던 피해자는 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처벌을 받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수사가 진행될 때만해도 아버지를 처벌해 달라던 친구가 마음이 변했다. 주변에서 회유를 했기 때문일까, 친구의 진심일까. 한참을 고민했었다.

법정에서 판사님이 피해자인 첫째 딸에게 묻는다. “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처벌 받는 것을 원하지 않나요?”, “네, 감옥은 안 갔으면 좋겠어요.”, “왜요? 처벌해 달라고 경찰에 신고한 거 아니에요?”, “잘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아빠가 감옥에 가는 건 싫어요.”

법원의 고민이 깊어진다. 필자의 고민도 깊어지는 순간이다. 재판을 종결하면서 재판부는 피해자 국선변호사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준다. 필자는 첫째 딸이 아버지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다는 의사를 진지하게 표시하였고, 필자와도 충분히 상의를 거친 것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개진했다. 피해자의 첫딸이 법정에서 증언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아버지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마음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사실 필자는 그래도 실형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을 했다. 사안이 중하고 죄질이 매우 안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는 결과를 접하고 놀라기는 했다. 결과가 상당히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첫째 딸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둘째 딸에 대한 혐의는 명확하지 않은 점 등이 유리한 정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검찰에서는 항소를 했다. 그리고 며칠 전 항소심 재판부에서 전화가 왔다. “피고인 000사건 피해자 국선변호사님이시죠. 친족 강제추행 사건인데, 이례적으로 집행유예가 선고되어서 피해자 국선변호사님 의견 좀 들어보려고 전화를 드렸어요.” 통화를 마치면서, 항소심 재판부는 양형조사를 해보겠다고 했고,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조력할 수 있는 부분의 협조를 구했다.

형사사건을 진행하다보면, 피해자와의 합의가 처벌의 정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새삼 느끼는 경우가 많다. 법원의 관용은 피해자의 용서가 있을 때 가능할 것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때로는 위 사안처럼 이례적인 결과도 만들어 낸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반성 없이, 관대한 처벌은 있을 수 없다.

 

서정현 변호사 nackb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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