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캠페인과 국정 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양해를 부탁드린다. 문재인 정부는 현실적인 제약 안에서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해 5월 정권 출범 보름여 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한 ‘5대 인사원칙’ 위배 논란에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초대 내각 후보자에 대한 인사원칙 후퇴 논란으로 출범 직후부터 위기를 맞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문제가 있는 사람은 고위 공직자로 임용하지 않겠다는 5대 인사원칙을 밝혔다. ‘문재인은 박근혜와 다르다’라는 굳은 결의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웠다.

청와대는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다르다”라며 비켜갔다. ‘같은 위장전입이라도 우리는 격이 다르다’라는 의미였다. “후보자가 가진 자질과 능력이 관련 사실(5대 인사원칙 위배)이 주는 사회적 상실감에 비춰 현저히 크다고 판단하면 관련 사실 공개와 함께 인사를 진행한다”며 스스로 만든 예외 기준을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오만함까지 보였다.

부패한 정권을 단죄할 만큼 현명한 국민들이었지만 억지를 눈감아줬다. 어렵게 되찾은 안정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그 결과 ‘사연 있는 빵 한 조각’은 계속 터져 나왔다. 허위 혼인신고 이력을 가진 이가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추대 되는가 하면, 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사외이사 겸직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에는 외유성 출장과 셀프 후원금 논란을 빚은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14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는 유독 ‘인사’ 분야에서 박한 평가를 받았다. 한 일간지 조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고위공직자 인사를 ‘B학점’으로 평가했다. 역대 정권 중 가장 높은(83%) ‘취임 1년 지지율’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들 역시 같은 고민 앞에 선다. ‘후보자 자질과 능력인가’ ‘사회적 상실감인가.’ 결국 최종 선택은 ‘자질과 능력에 대한 기대’다. 사회적 상실감을 ‘사연 있는 빵 한 조각’으로 애써 포장하며 말이다.

6.13 지방선거에서도 이러한 선택지가 던져졌다. 자그마치 23개나 된다. 안산 지역 공직 후보자 55명 중 23명이 전과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총 8개 경기도의원 선거구 중 3개 지역에서는 전과기록 보유자들끼리 경쟁하는 상황도 벌어지게 됐다.

늘 그래왔듯 이들은 어쭙잖은 포장 뒤에 숨는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현 정부의 독선을 견제하기 위해.’ 안산시장 후보 중 유일하게 전과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모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조직특보’라는 흔한 능력(?) 뒤에 숨었다.

현재 선관위에는 화려한 전과 기록 외엔 뚜렷한 자질이 보이지 않는 후보자들이 더러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만약 이들이 별 어려움 없이 당선된다면 이들의 ‘사연 있는 빵 한 조각’ 이력은 뒤에 있을 선거에서 ‘자질과 능력’으로 둔갑돼 우리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우리는 포장된 능력에 놀아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국가와 결혼해 부정부패에 연루될 가족이 없다’던 그는 가족보다 더한 비선을 앞세워 국고를 빼돌렸다. ‘대기업 사장 출신’ ‘가훈은 정직’이라던 또 다른 이도 부정부패에 연루돼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차라리 덜 능력 있는 이를 뽑았다면 국가적 망신만은 막았을 텐데.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어눌한 말주변으로 숱한 자질 논란을 낳았다. 대화를 우선시하는 대북관으로 사상을 의심받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지도자 반열에까지 올랐다. 깨끗하고 소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선거마다 반복되는 도돌이표와 절연할 때다. 약간의 자질 부족은 괜찮다. 무능한 정권을 쫒아낸 우리는 아주 맹탕을 세울 만큼 멍청하지 않다.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