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인류학자들이 우리의 상식과 너무도 다른 사실을 전하고 있다. 대부분의 원시사회가 축제와 오락의 사회였으며, 비문명권의 사람들은 지금도 하루 서너 시간만 노동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고되게 일하지 않는데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다 채워지는 사회. 한 인류학자는 이러한 원시사회야말로 “최초의 풍요로운 사회”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 또한 삶이 축제와 놀이로 구성되어 있었다. 심지어 농사일이 가장 바쁜 시기일수록 더 많은 축제들이 있었다. 노동 후에 놀이가, 놀이 후에 노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놀이가 노동 안에 있어 삶을 생기 있고 리드미컬하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노동사회학자 보방은 1700년경만 해도 평민들이 일하는 날은 1년에 180일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엔 토요일과 일요일은 물론이요, 월요일까지 ‘블루 먼데이’라고 부르며 일을 하지 않아서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 한다. 그 나흘조차 온갖 축제와 종교 행사로 쉴 때가 많았고 일가친척의 생일까지 다 찾아 놀았다니.

영국의 역사학자 E.P 톰슨 또한 18세기까지 노동 생활은 “한바탕 일하고 한바탕 노는 것의 반복”이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실컷 놀다가 내킬 때 일하기 시작했으며, 무수한 축제와 잦은 파티. 음주와 유희가 밤샘 작업과 어우러져 있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자. 이것은 그들이 게을렀다는 얘기가 아니다. 산업사회 이전의 노동자들은 노동하기 위해 살지 않았으며, 필요 이상으로 노동할 이유가 없었던 것뿐이다. 그들에게는 놀고 축제를 열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인생을 즐기는 것이 훨씬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만큼만 노동을 했다.

중세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에덴동산에서 “가치 있는 활동은 고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담과 이브가 무엇을 하건, 그것은 ‘노동’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유명한 책의 저자인 호이징가도 중세의 생활은 놀이로 충만했으며, 르네상스의 찬란한 문화 또한 놀이 정신의 산물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노동과 생산, 발전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많이 만들고 많이 버는 것, 즉 물질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러한 삶이 스포츠와 예술 같은 놀이마저 노동으로 만들고 말았다고 호이징가는 탄식한다.

공부는 어떠한가. 이 또한 학문적 연구의 즐거움보다 고뇌 노동의 한 부분이 된지 오래다. 문학은 노래였으며, 철학은 지혜를 겨루는 수수께끼였고, 과학은 마법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합리’와 ‘객관’이라는 이름의 칼날이 마법을 과학에서 쫓아냈다. 세상 전체를 감싸는 기운을 이해하려던 마법과 연금술사 대신 시작된 건 차가운 실험, 모든 것을 인과관계로 분석하는 이 실험은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고, 자연을 객관적인 관찰의 대상, 심지어 우리가 정복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제 학문은 즐거움이 되어야 하고 의미있는 삶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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