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화지에 꿈을 풀어 놓은 것 같다. 소설가 윤후명을 협궤열차가 다니던 철길 위에서 만난 것은 구절초 꽃잎이 휘날리는 사진전이 열리는 철교 밑에서다.

실로 17년 만에 일이다.

30대에 그의 집에서 매주 문학 모임을 했다.

나는 4년 정도 시 공부를 한답시고 그의 집을 들락거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시의 틀과 정신이 그의 영향이지 않았나싶다.

물론 동인 활동을 하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윤후명의 시집 명궁을 견인하는 철학적 시어는 내 시의 뿌리가 되어 첫 시집 ‘똥지게를 진 예수’의 시편들을 이루고 있다.

그런 인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7년을 아무 연락도 없이 지냈다. 물론 신문 지상을 통해 혹은 인터넷을 통해 그의 소식을 듣고 있었지만 전화 한 통 안 하고 살았으니 무심한 사제지간이다.

안산에 머문 7년의 삶에는 그의 인생 중반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특히 소설 협궤열차에 수록된 자선적 삶에 대한 사유는 아직도 투명하다.

그 바탕에는 안산이라는 도시의 성장 과정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 소설 협궤열차를 읽는 재미는 쓸쓸하면서도 담백하다.

협궤열차하면 어떤 면에서 소설가 윤후명보다 내가 더 전문가일 수 있다. 나는 수인선을 타고 인천으로 통학하던 통학생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내 아버지도 그랬고 나도 협궤열차를 이용해 유학 아닌 유학을 했다. 협궤열차의 숨소리도 기억하고 그 흔들림도 아직 내 몸은 기억하고 있다.

그뿐인가 사리포구와 소래포구에 번지던 그 비릿함을 내 후각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군자역을 지날 때마다 그림처럼 내 눈에 박히던 염전의 수차와 염부의 잰 발걸음 그리고 하얀 소금은 또 어떤가.

사진은 잠시 머문 시간을 담고 우리에게 보란 듯이 뽐낸다.

거기에는 열차의 몸체와 비좁은 의자에 앉아가며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역전을 지키는 강아지도 등장한다.

모든 것이 과거 속에서 쓸쓸히 웃고 있다.

사람들은 사진을 매개로 공유했던 시대를 얘기하고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협궤열차에 대한 사진전의 가을은 그렇게 수줍게 익어갔다.

윤후명은 노적봉의 엄나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죽은 엄나무보다 가을 어느 날 엄나무 밑에 우리가 쓴 시와 그림을 매달며 막걸리를 나누던 시간을 떠올렸다.

성포 포구를 배경으로 뱃사람이 드나들던 성황당 밑에 시화를 걸며 문학을 얘기하던 젊음은 죽은 엄나무만큼이나 우리들 가슴에 박제되어 남아 있다.

그것이 엄나무에 대한 우리의 예의며 사랑법이었다.

가을이 가고 있다. 그 가을은 1995년의 겨울. 폐선이 되면서 우리 곁을 떠난 협궤열차와 함께 눈부시게 한다. 안산 그리고 인천, 수원을 오가던 수인선 협궤가 어떻게 재탄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전철이 들어서는 땅 속으로 칩거의 발걸음을 옮길 것인지 아니면 덥입혀진 새로움으로 우리 앞에 당당히 설지. 그렇기에 협궤열차라는 단어는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한다.

협궤열차는 그것을 타고 시간을 오가던 촌부들의 기억과 신도시를 접했던 초기 이주민들의 신선한 기억 속에 남아 우리를 추억하게 할 것이다. 때로는 시로, 때로는 사진으로, 때로는 소설로.

어느 누구도 안산을 문화의 불모지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만큼 안산이 중형도시로 성장했고 문화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나가고 있는 때문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1월의 마지막 주간 내 삶의 절반을 반추해 보며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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