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이후, 아이들이 교무실로 우르르 몰려오더니‘선생님! 밥에서 콩벌레가 나왔어요. 밥이 너무 맛이 없어요.’난리가 났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맛있게 먹던 아이들이 학교급식이 입에 맞을 리가 없다. 하긴 나부터도 학교급식이 먹기 싫다보니 밖에서 사 먹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아이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학교급식이 시행된 이후로는 도시락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나는 학창시절 도시락에 대한 추억은 잊을 수가 없는데, 어머니가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 주신 것은 유년시절 계룡산으로 소풍을 갔을 때다. 우리는 계룡산 꼭대기에 있는 군부대로 군용트럭을 타고 소풍을 갔다. 어찌나 마음이 설레든지 밤새 잠을 설쳤다. 어머니는 노란색 양철 도시락에 고추장이 담긴 작은 종지를 넣어 주셨다. 그것을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두르고 덜컹거리는 산길을 따라 정상에 이르러 도시락을 펴들었을 때는 밥과 고추장이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그 도시락이 어찌나 맛있던지 지금도 그 때의 추억을 잊지 않고 있다.

그 후 중학교에 입학하여 도시락을 싸 주실 때 어머니는 작은 병에 김치를 담아 주셨다. 어쩌다 계란 프라이를 해주시면 밥 속에 감추어 달라고 부탁했다. 도시락에 계란 프라이가 있는 것을 알면 친구들이 가만 두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후각이 발달한 녀석들은 며칠 굶은 승냥이로 돌변하여 순식간에 먹이를 낚아채듯 내 반찬을 가져갔다. 젓가락만 들고 학교에 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다른 교실로 원정을 떠나기도 했는데 새 학기가 시작되어 몇 달이 지나고 나면 녀석들의 양 볼에는 살이 피둥피둥 오르고, 턱은 세 겹 네 겹이 되었다. 교실을 돌아다니며 밥과 반찬을 빼앗아 먹다보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먹는 양도 많고, 영양분도 골고루 섭취하기 때문이었다. 날이 갈수록 젓가락만 들고 다니는 녀석들은 늘어나고, 그들의 공격은 더욱 거칠어졌다.

한 학기가 지날 무렵이면 김치를 담은 병 입구가 녹이 슬어 책가방은 온통 김치 국물로 범벅이 되고, 책이며 공책은 뻘겋게 물이 들었다. 겨울철이 되면 수업시간에 조개탄 난로가 벌겋게 달아오르고, 그 위로 도시락이 차곡차곡 쌓여 올라가면 신경은 온통 그리로 쏠렸다.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눈앞에 도시락이 보일뿐이었다. 맨 아래에 놓여 있는 도시락에서 밥 타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기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김치찌개 속에 들어 있는 털이 숭숭 나고 '검'자 도장이 찍힌 돼지고기 한 점을 놓고 서로 먹겠다고 동생들과 다투던 그 시절, 이처럼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은 나의 큰 즐거움이요 기쁨이었다. 어머니는 이불 밑에 도시락을 넣어 두었다가 챙겨 주셨다. 연탄을 갈기 위해 이른 새벽에도 몇 번씩이나 일어나시곤 했던 어머니는 내 도시락을 준비하고, 아침을 차리기 위해 잠도 주무시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어머니가 싸 주시던 도시락이 그립다. 도시락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을 이제야 느끼는 것은 나이 들고,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조금이나마 철이 든 탓일 게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들이 경험했던 도시락을 가방에 넣어주시던 그 따스한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우르르 몰려나가 서로 빨리 먹겠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 학창시절 어머니의 정을 느끼며 도시락을 먹던 그 추억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으며 살고 있지만 그 못지않게 많은 것을 잃어가면서 살고 있다. 아랫목에 양은 도시락을 넣어두었다가 가방에 넣어주시던 그 어머니의 손길이 무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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