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어린 시절, 3월이 오면 즐거웠다. 혹독한 추위에서 벗어나 들로 산으로 마음껏 뛰어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울가에 핀 버들강아지, 양지바른 무덤가에 할미꽃, 뒷동산에 진달래가 필 무렵이면 어찌나 좋은지 미친 듯이 산과 들을 뛰어 다녔다. 그 시절 자연은 우리들에게 곧 생명이었다. 진달래꽃을 따 먹고, 아카시아 꽃이 피면 온종일 아카시아 나무 곁을 떠나지 않은 채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며 꽃을 따 먹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조차 과외수업을 해야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학교성적에 신경을 써야 한다. 더구나 일제고사까지 부활했으니 아이들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부모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아이들의 석차에 어머니들의 반응이 여간 민감하지가 않다. 아이들은 어머니라는 리모컨에 의해 조절되는 로봇처럼 무거운 가방을 메고 영어와 수학과 논술을 배우러 다녀야 한다.

그러다보니 갈수록 신체는 허약해지고 말이 없고, 내성적인 아이로 변해 간다. 등에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두툼한 안경을 쓰고, 말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불쌍하다. 아이들이란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웃고, 떠들고, 뛰어 다니며 클 때,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질 터인데 그저 온실 속 화초처럼 나약하게 이기적인 모습으로 성장해 가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그렇다고 어머니들만 탓할 수도 없다. 세상풍조가 그러하니 그 풍조를 따라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기도, 취직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결혼할 나이가 되어도 결혼조차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 터이니 내가 그 아이의 부모일지라도 어쩔 수 없이 성적이 메일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어느새 온천지가 봄의 향기로 가득하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동토에는 쑥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개울을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스레 들여온다. 3월은 새 생명이 탄생하는 계절이다. 생명의 탄생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하지만 3월이 되어도 그래서 꽃이 피고, 나비가 하늘을 날고, 꽃향기가 진동을 해도 그 향기조차 맡을 수 없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저 아이들도 꽃향기를 맡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우고, 들과 산을 뛰어 다니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다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책상위에 작은 화분을 하나 갖다 놓았다. 마음이 삭막해질 때마다 그 작은 화분을 바라보면서 3월이 오면 들판을 뛰어 다니던 그 시절을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그러면 어느덧 내 머릿속에는 파아란 하늘이 보이고, 예쁜 나비가 나는 모습이 그려지고, 진달래 향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의 3월은 너무나 슬프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우리는 슬프게 3월을 보내고 있다. 기나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희망의 밝은 빛이 감도는 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는 너무 슬프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들의 마음에도 아름다운 3월이 오겠지.

지난겨울은 눈도 많이 내리고 무척이나 추웠다. 하지만 그토록 추웠던 겨울도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나니 따스한 봄이 왔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아서 아무리 힘든 시련과 고통의 시기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많이 힘들어도 언젠가는 다가올 우리들 마음의 봄을 기다리며 아름답고 희망차게 3월을 보내야겠다.

우리들 어린 시절, 3월이 오면 즐거웠다. 혹독한 추위에서 벗어나 들로 산으로 마음껏 뛰어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울가에 핀 버들강아지, 양지바른 무덤가에 할미꽃, 뒷동산에 진달래가 필 무렵이면 어찌나 좋은지 미친 듯이 산과 들을 뛰어 다녔다. 그 시절 자연은 우리들에게 곧 생명이었다. 진달래꽃을 따 먹고, 아카시아 꽃이 피면 온종일 아카시아 나무 곁을 떠나지 않은 채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며 꽃을 따 먹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조차 과외수업을 해야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학교성적에 신경을 써야 한다. 더구나 일제고사까지 부활했으니 아이들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부모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아이들의 석차에 어머니들의 반응이 여간 민감하지가 않다. 아이들은 어머니라는 리모컨에 의해 조절되는 로봇처럼 무거운 가방을 메고 영어와 수학과 논술을 배우러 다녀야 한다.

그러다보니 갈수록 신체는 허약해지고 말이 없고, 내성적인 아이로 변해 간다. 등에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두툼한 안경을 쓰고, 말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불쌍하다. 아이들이란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웃고, 떠들고, 뛰어 다니며 클 때,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질 터인데 그저 온실 속 화초처럼 나약하게 이기적인 모습으로 성장해 가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그렇다고 어머니들만 탓할 수도 없다. 세상풍조가 그러하니 그 풍조를 따라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기도, 취직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결혼할 나이가 되어도 결혼조차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 터이니 내가 그 아이의 부모일지라도 어쩔 수 없이 성적이 메일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어느새 온천지가 봄의 향기로 가득하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동토에는 쑥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개울을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스레 들여온다. 3월은 새 생명이 탄생하는 계절이다. 생명의 탄생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하지만 3월이 되어도 그래서 꽃이 피고, 나비가 하늘을 날고, 꽃향기가 진동을 해도 그 향기조차 맡을 수 없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저 아이들도 꽃향기를 맡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우고, 들과 산을 뛰어 다니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다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책상위에 작은 화분을 하나 갖다 놓았다. 마음이 삭막해질 때마다 그 작은 화분을 바라보면서 3월이 오면 들판을 뛰어 다니던 그 시절을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그러면 어느덧 내 머릿속에는 파아란 하늘이 보이고, 예쁜 나비가 나는 모습이 그려지고, 진달래 향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의 3월은 너무나 슬프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우리는 슬프게 3월을 보내고 있다. 기나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희망의 밝은 빛이 감도는 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는 너무 슬프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들의 마음에도 아름다운 3월이 오겠지.

지난겨울은 눈도 많이 내리고 무척이나 추웠다. 하지만 그토록 추웠던 겨울도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나니 따스한 봄이 왔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아서 아무리 힘든 시련과 고통의 시기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많이 힘들어도 언젠가는 다가올 우리들 마음의 봄을 기다리며 아름답고 희망차게 3월을 보내야겠다.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