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겨울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내 손과 발은 동상에 걸려 퉁퉁 부었다. 퉁퉁 부은 손등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런 나를 위해 어머니는 여러 날 밤을 지새우며 털실로 옷과 장갑을 떠 주셨다. 한밤중에 잠에서 깰 때면 나는 등잔불 아래서 뜨개질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한 해 전에 입었던 털옷을 한 올 한 올 풀어서 나와 내 동생들의 새 옷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겨우내 나는 어머니가 떠 주신 장갑을 끼고 친구들과 함께 얼음을 지치고 연을 날리며 팽이를 쳤다. 그 무렵 늘 나와 함께 놀던 친구가 폐렴으로 죽었다. 아침이 되어 그의 집에 놀러 갔을 때 간밤에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죽음은 내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함께 얼음을 지치고 팽이를 치던 친구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아련히 슬픔으로 남아 있다. 병이 나도 약 한 첩을 써 보지 못한 내 친구들은 그렇게 세상을 떠나서 우리 집 뒷산에 있는 작은 돌무덤의 주인들이 되었다. 이처럼 손등을 갈라지게 하고 심한 열병을 앓게 하고 친구들을 앗아가 버린 겨울이 지나면 곧 봄이 왔다. 겨울이 고통스러웠던 만큼 봄은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때의 밝은 빛이었다. 그 빛을 나는 아지랑이와 종다리의 지저귐과 돌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오는 돌나물의 파릇파릇한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도무지 봄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 곁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머지않아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스르르 녹으면서 온갖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메마른 나뭇가지에는 물이 오르고, 서서히 싱싱한 잎을 피울 준비를 할 것이다.

그 황량한 동토에 온갖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메마른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아나오는 모습처럼 신비한 일이 있을까? 도무지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위대한 신의 마술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는 신의 마술도 아니고 우연한 일도 아니다. 우리 눈앞에 이렇게 신비한 일들이 펼쳐지기 까지는 그 안에는 눈물겨운 시련과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그 메마른 나뭇가지에 눈이 내리고 강풍이 몰아치는 수많은 시련이 있었다. 이 같은 시련을 견뎌낸 나뭇가지에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이다. 그 나무가 시련의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였더라면 잎을 피우지도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네 인간사도 이와 마찬가지다. 시련의 과정 없이 어떤 일을 이루기는 어렵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라는 어느 시 구절처럼 인생은 그렇게 흔들리며 피는 꽃인지도 모른다. 메마른 나뭇가지에도 생명이 움트듯이 지금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 시련을 이겨내고 나면 언젠가는 따스한 봄이 오고 새로운 생명이 움트게 되는 것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고난과 시련이 끝나면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자연의 순리를 어길 수는 없다. 고통의 순간도 어찌 보면 새 희망을 싹트게 하는 준비의 과정이다. 그러고 보면 봄은 우리에게 생명의 신비함뿐만 아니라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준다.

그토록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나니 어디선가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우리들에게 희망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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